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증거는 반드시 1심 기록 외부에서 추가로 확보한 물적 자료나 진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제출된 증거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거나, 기록 속에서 간과된 정황을 새롭게 특정하는 것 역시 항소심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무상 문제되는 것은 ‘새로운 증거’의 범위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의 증거조사와 사실인정에 관해, 원심이 채택·조사한 증거라 하더라도 그 평가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면 이를 시정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증인의 진술 신빙성 판단은 경험칙과 논리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중요한 부분에서 진술이 번복되거나 객관적 자료와 배치되는 경우에는 그 신빙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1심에 출석한 증인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경우, 항소심에서 다시 불러 다투어서 원심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증거’가 되고 무죄를 받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한 사기 사건에서 이러한 쟁점이 부각된 바 있다. 피고인은 다수의 계(契)를 운영하면서 금원을 교부받
수사 중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국 구속되었다면,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구속기간을 고려해 매우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절차적 권리의 행사다. 특히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방어권의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구속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력한 처분이지만, 방어권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12조는 적법절차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 제30조 역시 피의자의 변호인 선임권을 명시하고 있다. 수사 단계에서 작성되는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조서는 이후 공판에서 핵심 증거로 기능한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자백이나 진술이라 하더라도 임의성과 신빙성이 인정되어야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시해 왔다. 그러나 일단 기록으로 확정된 진술은 재판에서 번복하기가 쉽지 않다. 진술 번복은 그 자체로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속 직후의 조사 국면은 단순한 해명 단계가 아니다. 향후 재판의 기본 구조가 형성되는 시기다. 수사기록이 작성되는 바로 그 순간, 피의자의 입장은 문서화되어 사건의 ‘공식 버전’으로 굳어진다. 둘째, 수사는 ‘진행 중’이라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세상 밖에서 얽혀 있는 금전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아직 회수하지 못하였거나, 거래나 계약으로 인해 받아야 할 금액이 남아 있는 경우, 교도소에 있다고 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재소자의 신분이라도 민사 절차를 통해 채권을 추심하고 권리를 지키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채권 추심의 첫 단계는 상대방에게 공식적으로 지급을 요구하는 일이다. 구두나 전화로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훗날 증거가 되지 않으므로, 내용 증명 우편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야 한다. 내용 증명은 ‘언제, 어떤 요구를 누구에게 하였는지’를 공적으로 증명하는 문서이며, 재소자 본인이 직접 발송할 수는 없지만, 가족, 지인, 또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문안을 작성하고 위임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내용 증명에는 빌려준 날짜와 금액, 상환 기한, 상환이 지연된 사유, 그리고 일정 기한 내에 변제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개시하겠다는 경고 문구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용 증명을 보냈음에도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지급을 회피하는 경우, 다음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절차는 지급 명령 신청이다. 지급 명령은 일반적인
형사재판을 오래 지켜본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과연 형사법정은 '정의'를 얼마나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유죄가 가볍게 선고되는 듯한 사건도 있고, 반대로 무죄가 쉽게 내려졌다는 평가를 받는 사건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형사사법 제도의 본질과 직결된다. 1995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제이 심슨 사건'은 사재판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전직 미식축구 스타이자 배우였던 그는 전처와 지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된 차량과 장갑, 과거 폭력 전력, 도주 장면 등 여러 정황증거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대체로 유죄를 예상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변호인은 검찰이 제시한 장갑을 피고인이 법정에서 직접 착용하도록 했고, 맞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며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 사건은 형사재판에서 무죄란 ‘무죄임이 입증된 경우’가 아니라 ‘유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못한 경우’에 선고된다는 원칙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 원칙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는 무죄추정 원칙의 구체적 표현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이 실제 재판 과
최근 ‘형식적 공탁’이나 ‘기습적 공탁’에 대한 재판부의 경계가 높아지며, 공탁에 대한 질문이 부쩍 많아졌다. 실제로 많은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이 합의가 어려울 때 공탁을 대안적 수단으로 고려하지만, 공탁이 항상 유리한 정상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공탁까지 했는데 왜 실형이 나왔을까요?”라는 질문은 최근 형사재판에서 자주 들려오는 의문 중 하나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공탁금을 실제로 수령하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감형 사유로 삼는 경우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의 양형기준이 훨씬 엄격한 방향으로 정비되면서 이러한 형식적 공탁이 양형에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수령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 사실이 판결문에 기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공탁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양형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실제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는 공탁제도의 법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현행 공탁법상 피고인(공탁자)이 공탁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피해자(피공탁자)가 공탁소에 직접 ‘서면’으로 수령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재래식 변소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누군가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예전에 맡았던 마약 사건의 증인신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증인에게 “검은 봉투였나요, 투명한 봉투였나요?”를 집요하게 질문하여 결국 마약 전달책으로 지목된 피고인의 무죄를 받아냈다. 우리 의뢰인은 마약 전과가 있었고, 이번에 또 마약을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의뢰인에게 마약을 전달했다는 제보자는 장소, 시간, 정황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나는 의뢰인과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담하면서,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전면적으로 무죄를 다퉈보기로 했다. 증거기록에는 제보자가 의뢰인에게 전달했다는 마약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투명한 봉지에 마약이 담긴 사진. 그런데 제보자의 진술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처음 조사에서는 분명 ‘검은 봉투에 포장해서 전달했다’고 진술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명한 봉투’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봉투 색깔을 헷갈렸다는
1심 판결 선고 결과에 대해 불복하여 항소심을 진행할 때,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마다 달리 판단해야 하겠지만, 우선의 기준을 제시하자면 1심 판결의 양형 이유를 보고 결정하면 효과적이다. 양형 이유에는 판사가 어떤 이유로 선고형을 정했는지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풀이해 놓고 있는데, 특히 불리하게 판단된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유리하게 변경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 절도, 사기, 상해 등과 같이 혐의가 명백하고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서 1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하였음에도 실형이 선고되었다면, 항소심에서는 양형 부당으로 다투되 결국 피해자와의 합의 및 처벌 불원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양형 요소다. 특히 1심에서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았다면 항소심에서는 반드시 합의를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법원에 양형 조사 신청을 하여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함에 있어, 당사자 또는 당사자 가족이 직접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하게 되면 피해자는 감정이 앞서거나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가 진행하면서 최소한의 금액으로 처벌 불원의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변호사의 중요한 능력이다. 또한, 보이스피싱이나 재테크 투자, 가상화폐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거나, 구속 수사를 받는 중에 배우자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이혼 소장을 받는 재소자 입장에서는 황망하기 그지없다. 교정시설이라는 특수한 환경 탓에 외부 소식을 제대로 접하기도 어렵고, 이혼 사유로 적힌 내용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즉각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감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이혼 소송에서 불리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감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이혼이 자동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혼 소송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혼인 관계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그 파탄에 대해 어느 쪽이 더 큰 책임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혼을 원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사유’가 법적으로 인정될 만한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귀책 사유’에 대한 판단이다. 법원은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단순히 결혼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누구나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혼 청구 자격이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쉽게 말해, 가정을 깨뜨린 사람은 스스로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취지다. 예를 들
형사절차는 고소‧고발, 수사기관의 인지, 또는 타 사건과의 연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가장 흔한 경우는 피해자 또는 이해당사자가 제출한 고소장 또는 고발장에 의해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인데, 수사기관이 고소장을 검토하고 ‘혐의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형사절차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때 피의자는 대부분 예상치 못한 통보에 놀라거나 당황하게 마련이다. 같은 시각 고소인은 고소장을 작성하고, 고소인 보충 진술조서(참고인조사) 작성함으로써 자신이 알고 있는 피의자의 혐의사실에 대해 수사기관에 알린다. 이로 인해 수사의 초반 단계는 자칫 고소인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방향으로 흐를 위험도 존재한다. 이때 피의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소인이 명백한 허위 사실을 고소하거나 피고소인이 고소내용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독자적으로 소환조사에 적극 응하여 조사를 받으면 되지만, 실무적으로 수사관이 전화나 서면으로 소환 통보를 하는 경우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고지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을 분석한 후 법리적 대응을 하기 위해 최초 피의자신문 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여 입회하에 조사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즉, 이때가 골든타임(
나는 지난 30년간 형사재판정에 서 왔다. 경찰서 유치장부터 구치소, 교도소, 그리고 수많은 법정에서 각기 다른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만나왔다. 억울한 이들도 있었고,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절망하거나 이미 끝난 싸움이라며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본안 판결 전 구속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러나 실무에서는 그렇지 않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슬프게도 실무에서의 구속은 피의자가 결국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은 법적 명분일 뿐, 현실에서는 구속 자체가 향후 실형 가능성의 지표처럼 활용되는 것이다. 그러니 구속되었다는 건 이미 위기다. 법원이 당신의 혐의와 처벌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무겁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과연 끝난 것일까? 아니다. 이 위기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