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왜 '美보험사 CEO 살해범'을 응원했을까?

살해범 잡고보니 몸짱에 명문대 출신…지지자 더 늘어
선언문에 "기생충들, 당해도 싸" 분노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UHC)의 브라이언 톰슨 최고경영자(CEO)를 총격 살해한 혐의로 루이지 만조니(26)가 체포됐다. 만조니는 사건 이후 논란 속에서도 일부 미국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상징적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체포 과정과 배경…‘투매’ 신고로 도주극 끝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직원의 신고로 만조니가 체포됐다. 뉴욕 미드타운 힐튼호텔 입구에서 발생한 톰슨 CEO 피격 사건 이후 5일간 도주했던 만조니는 결국 오전 9시 15분경 꼬리가 잡혔다. 뉴욕 경찰은 4일 오전 6시 44분 만조니가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으로 20피트(약 6미터) 거리에서 톰슨 CEO를 여러 차례 총격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톰슨은 가슴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

 

사건 현장에서는 9mm 탄피 3개와 실탄, 휴대전화 등이 발견됐다. 특히 탄피에 새겨진 문구는 “지연, 거부, 방어”라는 단어가 쓰여있었다. 이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지연·거부한 뒤 법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방어한다는 보험 업계의 전술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톰슨이 사망하자 UHC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공식 사망 애도 성명에 그를 조롱하는 의미인 ‘웃음’ 이모티콘이 6만건 가까이 달렸었다. 톰슨이 CEO로 일해온 UHC 등 미국의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행태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만조니가 범행 당시 입었던 옷과 비슷한 옷을 입고 뉴욕 시내를 활보해 수사에 혼선을 주는 일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맥도날드 매장 직원의 신고로 체포된 걸 안 네티즌들은 해당 맥도날드 매장에 별점 테러를 가하는 상황이다.

 

만조니의 선언문과 동기…‘반기업 정서와 건강보험 비판’


체포 당시 만조니는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과 함께 세 장 분량의 손으로 쓴 선언문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경찰 보고서를 인용해 선언문에는 “솔직히 말해 이 기생충들은 당해도 싸다”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제시카 티쉬 뉴욕경찰청장은 “선언문에 반기업 정서와 건강보험 업계의 부패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담겨 있었다”며 “만조니는 자신의 범행을 제약업계의 부패와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만조니는 선언문에서 “갈등과 트라우마를 일으켜 죄송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대기업과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상징하는 ‘코퍼레이트 아메리카’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카진스키와의 연관성…‘유나바머’에 대한 동경

 

만조니는 사건 이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술문명을 비판하며 ‘유나바머’로 알려진 극단주의자 테드 카진스키를 흠모하는 글을 게시했다. 그는 카진스키의 선언문인 산업사회와 미래를 두고 “선견지명이 있는 문서”라고 칭송하며 극단적 사상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사제 폭탄을 이용해 미국 내 대학과 항공사 등을 공격해 3명을 숨지게 한 인물로,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만조니의 선언문은 이러한 카진스키의 사상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만조니는 볼티모어의 한 명문 사립고를 수석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수년간 만성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의료 시스템과 보험사의 비효율성에 극도의 분노를 느꼈던 것으로 드러났다.

 

NYT는 “톰슨의 죽음은 건강보험 업계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며, 일부 미국 시민들이 보험사와의 부정적 경험을 회상하며 만조니의 행위를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신병 인도와 향후 재판 전망

 

현재 뉴욕 경찰은 만조니를 2급 살인 혐의와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그러나 만조니가 뉴욕주로의 신병 인도를 거부하면서 실제 인도에는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10일 열린 펜실베이니아주 블레어카운티 법원의 범죄인 인도 심문에서 만조니는 “이 상황은 완전히 비현실적이며 미국 국민의 지성에 대한 모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뉴욕 경찰은 그의 범행 동기와 선언문을 면밀히 조사하는 한편,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논란 역시 재점화되고 있다. 만조니의 체포와 재판은 미국 내 기업의 책임 문제와 건강보험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