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간다던 강남 엘리트 가장, 그는 왜 일가족을 살해하였나

잘 나가던 직장 잃고 담보대출
실직 숨기고 주식 투자 시작해
투자 실패 탓하며 일가족 살해
돈 때문이 아닌 자존심이 원인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가족끼리 소원하게 지냈더라도 매년 5월만큼은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을 떠올리고,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 보기도 한다. 지난 14일, 가정의 달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한 가족에게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80대 부부 2명과 50대 여성 1명, 20대와 10대의 딸 2명 등 일가족 5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시신의 목 부위엔 졸린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들 일가족을 숨지게 한 범인은 가장인 이 모 씨였다. 이 씨는 사업 실패로 거액의 채무를 떠안게 되자 일가족을 몰살했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실패 후 체포되었다.


사업 실패를 이유로 일가족을 몰살한 이 씨의 범행은 어딘지 낯설지가 않다. 2015년에 있었던 이른바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을 그대로 답습한 듯 유서를 작성하고 직접 신고한 정황, 가족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목을 졸라 살해한 범행 방식, 정작 자신은 살아남은 결과까지도 똑같다.


2015년, 40대 강 모 씨는 서울 서초구의 모 아파트에서 결혼한 아내 이 씨와 중학교 1학년인 첫째 딸,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강 씨와 아내 이 씨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 출신으로, 강 씨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이직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선 상무이사까지 오르며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갔다. 탄탄한 직장을 기반으로 강 씨 부부는 단지 내에서 가장 큰 평수의 브랜드 아파트를 대출 없이 매매했다.


소위 강남 엘리트로 불리며 남부러울 것 없이 지내던 강 씨의 일신에 문제가 생긴 건 두 번째로 이직한 직장에서였다. 2009년, 강 씨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나와 강남의 한 대형 한의원 재무담당으로 이직하게 된다. 그때 받았던 연봉이 9,0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강 씨의 직장생활은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2012년 한의원 원장이 바뀌면서 승승장구했던 그의 커리어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다시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들어오는 일자리는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직장엔 자리가 없었다. 결국 강 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결과는 어땠을까. 1년간 2억 7000만 원의 손해를 얻었고 남은 것이라곤 태어나 처음으로 겪어보는 좌절감뿐이었다.


강 씨의 상황이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을 아내 이 씨를 비롯한 가족 그 누구도 몰랐다. 잘나가던 강남의 엘리트 가장이었던 강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일을 벌여왔다. 주식투자 실패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강 씨의 마지막 선택은 매우 극단적이었다.

 

2015년 1월 5일 밤, 미리 처방받은 수면제를 아내 몰래 먹인 뒤 스카프를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하기에 이른다. 둘째 딸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고, 인기척을 느낀 첫째 딸이 일어나자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역시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강 씨는 유서를 작성하고 119에 직접 전화를 걸어 범행 사실을 털어놓은 뒤 본인의 극단적 선택을 위해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 선택은 실패했다.

 

대청호에 뛰어들고 손목에 자해를 하는 등의 방식을 해보다가 정작 겁이나 주저했던 것이다. 가족들을 더욱 확실하게 살해하기 위해 숨이 끊어진 후에도 스카프를 계속 강하게 묶어두었던 잔혹한 살해방식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범행동기를 경제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보았다. 아내의 통장에 현금 2억 원이 있었으며, 당시 아파트의 평균 시세가 11억 원이었던 점, 강 씨의 부모와 처가 모두 중산층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점 등 그는 얼마든지 재기가 가능했다. 그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자기 체면과 자존심 문제일 뿐 가족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 씨는 여전히 수감 중이다. 강 씨가 가족을 살해하며 남긴 유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천국으로 잘 가렴. 나는 지옥에서 죗값 치를게” 죗값을 치를 수 있는 곳은 지옥이 아니라 교도소뿐이라는 것을 강 씨는 진정 몰랐던 걸까. 비록 가진 것 없어도 가족과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어리석게도 그는 알지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