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가운데 국제연합(유엔) 자유권위원회가 한국의 수형자 선거권 제한이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1년 이상 징역형을 받은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국제인권규약에 위배된다는 결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6개월 내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밝혀야 한다.
24일 취재를 종합하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경묵 씨 등 3인이 2019년 제기한 진정을 인용해 “공직선거법 제18조 1항 2호는 선거권 제한의 합리성과 비례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한겨레의 지난달 보도에 따르면 김 씨 등은 2014~2015년 양심적 병역거부 신념으로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16년 4월 13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하지 못했고, 2019년 “형기의 차별 없이 수형자의 투표권을 보장하라”는 취지로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문제가 된 선거법 18조 1항 2호는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않았거나 면제되지 않은 자’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7년 5월 이를 기각한 바 있다.
이에 유엔은 “진정인들에 대한 선거권 박탈 기간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따른 병역 이행 거부에 대한 처벌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진정인들의 권리 박탈은 양심 및 종교적 자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따른 불이익으로 자유권 규약 제25조 비(b)항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유엔은 선거권 박탈이 개별 사안별로 정당화되어야 하며, 모든 수형자에게 일괄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현재 독일, 스웨덴, 이스라엘 등 다수 국가가 수형자의 선거권을 전면 보장하거나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유엔 결정문을 관보에 게재해야 하고, 180일 안에 조처 내용을 밝혀야 한다. 한국은 1990년 자유권규약에 가입했고, 1991년에는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선택의정서에도 동의했다.
또한 헌법 제6조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ㆍ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 권고는 단순한 자문 수준을 넘어, 실질적 국내법상 의무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에서도 수형자의 참정권 보장은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고 있다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대표 변호사는 “참정권은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도 박탈될 수 없는 시민적 권리”라며 “선거권을 일괄 박탈하는 조항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권을 제공하는 것이 재사회화라는 교정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수형자의 범죄 유형이나 재범 가능성에 따라 선거권 제한을 차별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