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피해자의 진술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피해자에 대한 증인 신문은 사건의 핵심 절차가 된다.
이러한 사건에서 변호인은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부동의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검사는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진술조서의 진정성립을 피해자 본인의 입을 통해 인정받고, 그 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려 한다. 아울러 피해자의 법정 증언 자체도 새로운 증거로 사용된다.
결국 피해자의 조서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법정 증언까지 증거로 추가되므로, 형식상 증거가 늘어나는 결과가 된다. 이로 인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절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법정에서의 피해자 증언은 반드시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변호인은 검사의 주신문이 끝난 후 이어지는 반대신문을 통해, 피해자의 진술과 증언에서 드러나는 모순이나 비논리적인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재판을 이끌 수 있다.
다만 실제 재판에서는 피해자가 사전에 충분한 법률 조언을 받고 출석하는 경우가 많고, 수사 단계에서의 진술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변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증언을 유도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증인 신문은 변호사의 업무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신중한 준비가 필요한 분야로 평가된다.
증인 신문을 준비하는 과정은 흔히 섀도복싱에 비유된다. 섀도복싱은 상대 없이 혼자 권투 동작을 연습하는 것으로, 가상의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공격과 방어를 반복한다.
증인 신문도 이와 유사하다. 변호인은 예상되는 증인의 반응을 고려하여 질문의 흐름과 구성, 타이밍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고 점검한다. 이를 통해 실제 법정에서의 질문이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저항이 강하다. 따라서 변호인은 이 같은 심리적 요소까지 고려하여 신문 전략을 구성해야 하며, 이로 인해 증인 신문 준비는 더욱 복잡하고 고된 작업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충분히 준비가 이루어진 경우, 증인 신문은 사건의 결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에 명확한 모순이 발견되어, 이에 대해 법정에서 질문한 적이 있다. 피해자는 “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진술했지만 수사관이 잘못 기재했다”는 취지로 일관된 답변을 내놓았다.
진술의 변화를 설명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태도와 진술 사이의 불일치를 여러 부분에서 지적할 수 있었고, 이는 증언기록에 남았다. 이 또한 철저한 준비, 즉 섀도복싱의 결과다.
증인 신문은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절차가 아니라, 진술의 틈을 찾아내고 그 논리를 구조적으로 무너뜨리는 작업이다.
특히 성범죄 사건처럼 진술의 신빙성이 전부가 되는 사건에서, 증인 신문은 곧 판결의 방향을 결정짓는 열쇠가 된다. 준비가 곧 결과를 만든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치열하게 준비하는 것이, 형사변호인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