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이용자정보 제공, 법원 심사 없이 가능…인권위 개선 권고

수사기관 통신가입자 정보 영장 없이 확보
법원 통제 받지 않는 구조 개선 필요성 제기

 

수사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이용자 정보를 확보하는 현행 제도가 법원 통제를 받지 않는 구조로 운영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10일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 등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할 경우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해지일 등 이른바 ‘통신이용자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영장이나 사전 심사는 요구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은 요청 사유와 필요 범위를 기재한 정보제공요청서를 제출하면 사업자가 이에 응할 수 있다. 긴급한 경우에는 구두나 전자 방식으로 먼저 요청한 뒤 사후에 서면을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제도는 1978년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2012년 이후 법원 허가 절차를 도입하는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제도를 강제처분이 아닌 임의수사로 보고 영장주의 적용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정보 제공 사실에 대한 통지 절차가 없다는 점은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헌재 2016헌마388).

 

현재 제도는 사후 관리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기통신사업자는 정보 제공 내역을 기록한 대장을 보관하고 관련 자료를 갖춰야 하며, 제공 현황을 연 2회 정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구조에 대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문제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이용자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에 법원 허가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수사 과정에서 범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의 정보까지 포함될 수 있고, 정보 수집 범위와 목적이 넓어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수사에 활용되는 상황에서 해당 정보가 다른 데이터와 결합될 경우 개인의 행동 패턴이나 사회적 관계, 정치적 성향까지 분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같은 통신 관련 자료라도 통신비밀보호법이 적용되는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법원 허가가 필요하다. 통화내역, 기지국 접속 정보, 인터넷 접속 기록 등은 원칙적으로 영장을 통해서만 제공받을 수 있다. 긴급 제공이 이뤄진 경우에도 사후 허가를 받지 못하면 해당 자료를 폐기해야 한다.

 

반면 통신이용자정보는 이러한 절차 없이 제공될 수 있어 제도 간 불균형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인권위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통신이용자정보 취득에도 법원 허가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민감 정보 제공을 제한하고, 목적 외 사용 금지와 비밀 유지 의무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취득한 정보의 보관 기간을 제한하고 일정 기간 이후 폐기하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입법 이전 단계에서의 개선 방안도 제시됐다. 인권위는 정보 제공 범위를 최소화하고 기관 내부 심사 절차를 도입하는 등 통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보 공개 확대와 함께 운영 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 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는 통신사업자의 정보 제공 현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관련 제도 운영 기준을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또 검찰과 경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에는 정보 요청 단계에서 사전 심사를 거쳐 필요한 최소 범위의 정보만 요구하도록 하는 내부 통제 절차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우리 정부에 영장 없는 통신이용자 정보 제공 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2017년에는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해 영장 없는 개인정보 수집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