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지난번에 이어서, 특정 주제를 정하는 대신 독자분들이 보내주신 개별 질문들에 하나씩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추징금’, ‘형 집행순서’처럼 비슷한 주제를 묶어 정리해 드렸는데, 그러다 보니 계속 답변이 늦어지는 질문들이 생겨서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자투리 질문들을 모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서신을 통해 직접 질문을 주신 분은 한 분일지라도, 같은 고민을 안고 계신 분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드리는 답변들이 그분들의 답답한 마음을 덜어드리고,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Q. 저는 현재 보이스피싱 상담원으로 가담한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전체 공소금액이 대단히 큰 건 아니지만 피해자들이 많은 편입니다. 현재 선임된 변호사님은 제가 합의금을 다 마련할 수는 없으니 일정 비율로 공탁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공탁은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요? 공탁금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 좋은지도 궁금합니다.
A. 질문자분과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미 공탁을 하고 나서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도 있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공탁하기 전이라면 진심으로 뜯어말리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합의’와 ‘공탁’은 감형 효과가 천지차이(天地差異)이기 때문입니다. 일부라도 피해를 변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무조건 ‘합의’를 우선해야 합니다. 합의가 공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감형 효과를 갖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공탁은 피해자에게 채무를 갚았다는 의미만 있지만, 합의는 거기에 더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의미도 가집니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용서했다면, 판사 또한 낮은 형을 선고하는 것에 부담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일부 변호사들은 합의를 권하지 않고 바로 공탁부터 하자고 할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합의는 사실 너무나도 힘들고 번거로운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금전적 여력이 안 돼서 실제 피해금액 대비 일부만 제시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저희 법인 같은 경우에는 실제 피해금액의 10~20% 정도에 합의를 진행합니다) 어떤 피해자로부터도 좋은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난받는 건 다반사입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합의를 사정하면서 고되고 지난한 노력을 이어가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합의는 공탁보다 훨씬 더 감형이 많이 되고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고 또 자부심을 갖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변호사가 직접 합의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온전히 가족, 지인들의 몫이었는데요. 그때 제가 보이스피싱 사건을 맡으면 피해자 연락처 확보부터 진심을 다해 합의를 진행해 드렸고, 다른 로펌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구치소 내에서 “<법무법인 청>은 보이스피싱 사건을 잘한다”라고 입소문이 났고 지금과 같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희 전략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변호사 수도 늘어나면서 변호사가 배짱 좋게 합의에 무관심한 경우는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질문자분처럼 잘못된 전략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조언하면, 절대로 공탁부터 시작하지 마십시오. 합의금을 전쟁터의 총알처럼 소중하게 사용하며 최대한 합의를 위해 모든 노력을 해본 후에, 선고 일주일 전 정도에 합의가 안 되는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남은 합의금으로 공탁할 것을 권유해드립니다.
Q. 저는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에서 관리자급 직원으로 가담하여 1심 재판을 받았는데요. 검사 구형 2년이 나와서 조금 안심했는데, 형량도 2년이 나와버렸습니다. 이렇게 구형 그대로 형량이 나온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집행유예를 받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어안이 벙벙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A. 일단 안에서 기대하셨을 질문자분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이해되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걸 내려놨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오면 사람이 힘을 얻게 되지만, 많은 기대를 했는데 안 좋은 결과를 받으면 남아있던 의지까지 꺾이는 것이 인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기에 그 마음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제가 질문자분의 구체적인 사건 진행 과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언에 한계가 있을 것이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검사 구형을 다소 잘 받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도박사이트 사건에서는 단순 직원도 징역 2년 정도의 구형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관리자급 직원이었다면 징역 3년 이상을 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의뢰인들께 늘 드리는 말씀이 있는데, “구형은 구형일 뿐이니 듣고 너무 놀라지 마시라. 구형 2년을 받고 형량도 그대로 받을 수 있지만, 구형 5년을 받고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판례를 통해 전부 확인한 것입니다.
구형이 너무 잘 나오면, 저는 의뢰인이 안에서 너무 들뜨지 않도록 구형에 관해 지금 말씀드린 부분을 설명해 드립니다. 그리고 형량 예측은 구형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과 유사한 다른 사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항을 알 수 있는데, 구형을 잘 받기 위해서 검찰 전관을 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관을 선임함으로써 수사 과정에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를 얻는 것에 집중할 수는 있으나, 괜히 사무장들이 구형 작업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접근하는 것에 많은 돈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자분의 상황으로 돌아가 정리하면, 선고된 형량이 검사 구형과 동일하게 나온 것은 특별한 사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애초에 구형이 다소 가볍게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일반적인 사건과 비슷한 수준의 형을 선고받으신 셈이지요.
다만 감형 사유가 있었다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니 너무 낙심하지 마시고, 항소심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반드시 고려될 수 있도록 변론 전략을 잘 세워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