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오전 기자의 휴대전화로 010으로 시작하는 한 통의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자신을 법원 관계자라고 소개하며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불러 확인을 요구했다.
이어 “등기 반송”을 이유로 직접 수령이 어려운 날짜에 수령을 요구하고 전자 열람을 권유하며 특정 인터넷 주소 접속을 지시했다. 순간 ‘법원이 개인에게 특정 주소 입력을 안내할 리 없다’는 의심이 들어 통화를 끊었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법원 사칭 보이스피싱’의 전형적 수법이었다.
사기범들은 문자·통화로 ‘등기 반송’ ‘법원 영장’ 등의 문구로 불안을 자극한 뒤 피싱 사이트 접속이나 앱 설치를 유도해 개인정보를 탈취하거나 금전을 편취한다.
법원은 지난 7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 등기우편물에는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의 연락처가 기재돼 있지 않으며 집배원이 법원 등기 관련 개인 연락처로 연락하는 경우도 없다”고 경고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8545억원으로 전년 대비(4472억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5년 누적 피해액은 4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보이스피싱이 처음 집계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간의 피해액인 3조8681억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발신국은 중국이 94%를 차지했으며 베트남과 태국이 그 뒤를 이었다.
피해자 2만839명 중 20~30대가 36%(7508명)로, 60대 이상(25.5%, 5308명)보다 많았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코인 투자 열기가 젊은 층 피해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금융사기없는세상 집행위원장 이민석 변호사는 “최근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등 여러 기술이 발달해 (보이스피싱이) 단순 전화사기를 넘어 가상자산이나 코인 투자 사기와 결합하는 경우가 등장했다”며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에 관심이 많은 청년층이 ‘어설픈 지식’으로 피해에 노출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검찰은 2023년 10월 가상자산을 활용한 175억원 규모 ‘코인 환치기’ 보이스피싱 조직을 적발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이러한 수법들은 대규모 조직이 역할을 분담해 치밀하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며 “보이스피싱은 초기에 범죄조직이 체계적으로 구성돼 진행되는 만큼 단순 가담자라 해도 처벌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늦장 대응으로 피해가 커진 사례도 비판했다. 그는 “보이스피싱 사례는 아니지만 IDS홀딩스라는 다단계 회사가 재판 도중 1조 사기를 친 경우가 있었다”며 “재판 중 사기를 치는 것을 검찰이 모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경우에는 정부가 먼저 피해자에게 피해액을 100% 배상하고 이후에 가해자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대책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죄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과 기타 범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발신번호를 변조해 검찰이나 지인을 사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죄에 대한 단순 홍보에서 그치지 말고 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