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킹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예산이 편성됐음에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피해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신현일)는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30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보호관찰과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A씨는 2023년 7∼8월 중학교 동창인 피해자 B씨의 SNS 계정에 약 20차례 접속하고, B씨를 연상케 하는 숫자 조합을 자신의 계정에 게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A씨의 지속적인 SNS 접근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스토킹 행위가 중대한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29일 발생한 ‘대전 교제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그러나 가해자는 며칠 뒤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다.
스토킹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이후 3년간 발생 건수는 1만 545건에서 1만 3283건으로 26% 늘었다. 같은 기간 검거 인원도 9999명에서 1만 2995명으로 30%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 등 대응역량 강화’ 명목으로 2023년과 지난해 각각 67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실제 집행률은 2023년 1.5%(100만원), 지난해 20.9%(1400만원)에 그쳤다.
예산 세부 내역을 보면 피해자 보호·수사 대응 강화를 위해 책정된 항목은 대부분 집행되지 않은 반면 출장여비(800만원)는 2년 연속 100%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의 대응 부진은 다른 부처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스토킹 관련 예산 집행률은 경찰청 91.4%, 여성가족부 77.7%에 달했지만, 법무부는 22.9%에 그쳤다. 2023년에는 9.9%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허영 의원은 “법무부가 스토킹 범죄 대응 예산을 수천만 원씩 확보해놓고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에 가깝다”며 “출장비는 전액 집행하면서 정작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교육이나 협의 예산은 손도 대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스토킹 범죄는 단순한 개인 간 분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사회적 재난”이라며 “보여주기식 행정을 중단하고 피해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예산이 제때 집행되지 않으면 피해자 지원과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