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과 만나는 시점은 늘 다양하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찾아오신 분, 검찰 조사 단계에서 찾아오신 분,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찾아오신 분…. 사건 진행 상황이 서로 다른 만큼 그 안에 담긴 사연도 제각각이다.
필자가 맡았던 수많은 사건 중 유난히 뜨거운 감자였던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당시 주요 방송사와 포털 사이트의 메인 뉴스란에 연일 보도되었기 때문에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TV 뉴스나 신문 기사를 통해 접하셨던 기억이 있을 것 같은데, 그만큼 사회적 관심이 컸던 사건이었다.
“화장품 통에 마약 숨겨 국내 반입한 외국인 승무원들(2023. 09. 06. 연합뉴스 보도 기사 제목)”, 제목 그대로 외국인 항공사 승무원들이 화장품 통에 액상 대마를 은닉해 들여오려다 적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에서는 이들이 국제 마약조직에 연계되었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조로 보도를 이어갔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해당 사건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퍼졌고, 피고인들은 단숨에 ‘국제 마약 밀수범’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필자가 의뢰인 대 변호사로서 만나 본 이들은 악랄한 범죄자로 묘사되던 보도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항사 소속 승무원인 이들은 비행 전 성명불상자의 부탁을 받고 ‘액상 타입의 세럼 화장품’을 한국에 운반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화장품 안에는 수억원 상당의 합성대마가 들어있었고, 결국 이들은 마약류 수입 및 수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검찰은 이들에게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을 구형할 수 있는 마약류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청년들이었던 그들은 순식간에 마약 밀수범으로 몰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해당 사건이 매스컴을 타 대중의 야유를 받고 있는 만큼 상황은 좋지 못했다. 필자는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면서 생각했다.
핵심은 하나였다. ‘의뢰인들이 자신들이 운반한 것이 합성대마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해당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에 따라 이 사건은 ‘마약 밀수’가 될 수도, 단순한 ‘운반 착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수사 기록을 검토하면서 필자는 이 사건이 통상적인 마약 밀수 범죄의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피고인들이 받은 ‘운반료’는 일반적인 심부름 대금 수준이었고, 이들이 운반한 화장품은 외견상 시중 제품과 동일했으며, 피고인들은 평소 마약류와 전혀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어 마약이 이러한 경로로 운반될 수 있다는 점에 무지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사건은 승무원의 신분과 이들의 동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제삼자가 이를 악용해 벌인 범행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다.
필자는 뒤이어 의뢰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항공업계 내 물품 운반 관행’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내부 직원이나 지인의 부탁으로 선물이나 화장품을 대신 운반하는 일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필자는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승무원 커뮤니티 게시 글과 이들이 받은 운반 요청 내역, 실제 유사 사례 등을 전부 확보했다.
그리고 의뢰인들이 건네받은 화장품은 시중 제품과 겉모습이 완전히 동일하며, 운반료 또한 과다하지 않고 통상적인 수준이었다는 점, 성명불상자가 의뢰인들의 숙박지와 일정까지 파악하고 있었기에 심부름을 의뢰한 사람을 내부 직원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단순히 “피고인들은 해당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모를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가’를 설득하기 위한 변론을 설계했다.
의뢰인들의 비행 일정, 통신 기록, 계좌 내역, 휴대폰 사진 등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수사기관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했다.
또한 의뢰인들이 화장품에 마약류가 은닉된 사실을 알면서 국내에 반입하였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법원은 의뢰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의 진실은 기록 속에만 있지 않다. 이번 사건처럼, 누군가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찾아내야만 그 진상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곤경에 빠진 의뢰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로서 보이지 않는 사실을 끝까지 찾아내는 집념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