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를 정확히 세우는 것이 변호의 시작

장애 있는 미성년과 성관계한 의뢰인
“해당 사실 인지 못 했다”며 호소해
혐의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형사사건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으로 진실 찾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는 몰랐어요.”

 

필자가 만난 의뢰인은 장애가 있는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하고 이를 촬영한 혐의로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그는 필자에게 자신이 만난 상대가 장애가 있는, 그것도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따라서 사건의 쟁점은 명확했다.

 

‘의뢰인이 피해자의 나이와 장애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는가.’ 이것을 밝혀내는 것이 필자의 숙제였다. 처음 수사기관의 시선은 매우 차가웠다. 단순히 ‘성관계’를 했다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제강간’과 ‘성 착취물 제작’이라는 중대범죄가 함께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특히 장애인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법정형이 매우 높게 책정돼 있고, 사안의 특성상 조금만 대응이 늦거나 진술이 모호해도 구속의 가능성이 충분했다. 필자가 사건을 맡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세우는 일이었다.

 

성관계 사실 자체는 인정하더라도 그가 피해자의 장애나 연령을 정확히 인식했는지 여부, 그리고 ‘촬영’이라는 행위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철저히 구분해서 따져보아야 했다. 특히 성 착취물 제작 혐의의 경우, 실제 영상 촬영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촬영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의 세밀한 검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필자는 의뢰인과 수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사건 당일의 대화, SNS 메시지, 휴대전화 사용 이력 그리고 피해자와의 연락 과정까지 하나씩 되짚었다. 의뢰인은 필자에게 촬영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촬영된 것은 없다고 진술했다. 

 

이제 문제는 수사기관의 포렌식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였다. 일단 의뢰인의 휴대전화가 압수된 이상, 그 안에서 단 한 장의 사진이라도 발견되어선 안 됐다. 그랬다간 기껏 세운 부인 전략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포렌식 조사 과정에 직접 참관했다. 분석이 이루어지는 모든 단계를 확인했고, 실제 촬영물이나 복구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했다. 이 근거를 바탕으로 수사기관에 성 착취물 제작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증거물이 없으니, 검찰도 ‘성 착취물 제작 미수’로 수사의 방향을 좁히게 되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피해자의 연령과 장애에 대한 인지 여부였다. 검찰은 피해자가 ‘만 16세 미만의 장애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의뢰인에게 장애인 의제강간죄를 적용하려 했다. 이는 미성년자 의제강간보다 법정형이 훨씬 높고, 사실상 실형이 불가피한 죄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미성년자라는 점도 확실히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기에 해당 사건은 장애인 의제강간으로 의율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나이를 ‘만 16세 미만’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필자는 관련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연령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는 점을 검찰이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는 상태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더불어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은 어디까지나 검사에게 있고, 이를 피고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법원은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의뢰인의 혐의 중 미성년자 의제강간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성 착취물 제작 미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되었으나 이 또한 징역형의 집행유예라는 결과가 나왔다. 판결에 의해 의뢰인은 구속을 면하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의뢰인의 가족은 선고 당일 법정 밖에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형사사건은 종종 ‘인과가 명확해 피하기 어려운 죄’로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인식, 의도, 상황의 세 층위가 존재한다. 필자는 검사로서 수많은 마약·성범죄 사건을 직접 다뤄온 경험을 통해 그 사이의 미세한 틈을 끝까지 찾아냈다.

 

그렇게 사실관계를 집요하게 검증하는 일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구제할 수 있었다. 불리한 정황 속에서도 끝내 억울한 부분을 찾아 소명해 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무죄와 유죄를 가르는 경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