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캄보디아 ‘부건’ 조직, 급여·근태·고문까지…구속영장 청구서 분석

범죄조직 ‘부건’ 110명에 93억원 편취
로맨스스캠·검찰사칭·코인리딩 등 분업
조직원 총 인원 200명, 한국인 80~90명

 

캄보디아 현지에서 붙잡혀 지난 18일 국내로 송환된 한국인 64명 가운데 핵심 가담자 53명이 사기와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지난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으로 53명을 구속기소하고 이들의 금융계좌와 가상자산 지갑에 대해 추징보전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범죄 사실로 드러난 ‘기업형 보이스피싱’ 구조


14일 <더시사법률>이 입수한 구속영장 범죄 사실에 따르면 해당 조직은 캄보디아와 태국 등에 여러 사무실을 두고 분업화해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총책 아래 CS팀, 로맨스 스캠팀, 검찰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 투자 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5개 팀으로 나누어 활동했으며, 기본급 2000달러와 추가 인센티브 등 일반 기업과 유사한 급여 규정도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은 한국시간 기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토요일은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지각이나 근무 중 수면, 흡연 인원 제한 위반 등에 벌금이 부과됐고 외출 시 신발 사진 전송 등 상시 보고 의무가 있었다.

 

CS팀은 DB와 입출금, 범행 도구 등을 관리하며 가짜 명함 등을 제작해 다른 팀을 지원했다. 로맨스스캠팀과 보이스피싱팀, 공무원 사칭팀은 1차 유인책, 2차 상담원 등 단계별로 나누어진 매뉴얼에 따라 피해자를 기망했다. 코인 사기팀은 유인책과 상담원 이외 “매니저님 덕분에 고수익을 올렸다”는 바람잡이 역할도 별도로 존재했다.

 


프놈펜·방콕에 사무실…여권 압수·고문까지 조직적 통제


분업 체계는 사무실 위치에 맞춰 세분화됐다. 조직은 지난해 4월 프놈펜 ‘태자단지’에 로맨스스캠 사무실을 차린 데 이어 같은 해 12월 방콕에 검찰사칭 보이스피싱 사무실을 열었다.

 

올해 1월에는 프놈펜 소재 한 건물에 코인 투자 리딩과 공무원 노쇼 사기 사무실을 마련했다.

 

해당 사무실은 7월 초 거점을 옮기며 사기를 이어갔다. 옮긴 장소에는 남녀 숙소가 별도로 운영됐고 냉장고, 에어컨, 정수기, 공유기 등이 갖춰져 장기 체류가 가능했던 사실도 영장 사유에 포함돼 있다.

 

해당 조직의 규모는 약 200명으로 한국인이 80~90명, 나머지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으로 구성됐다. 총책 아래 실장·팀장·팀원으로 서열이 나뉘었고 총책이 사무실 임차비용, 광고 비용, 휴대전화 공기계 마련 비용 등을 부담하며 조직을 유지했다.

 

실장은 근태 관리와 팀장 지시를 총괄했고, 팀장들은 범죄 수법 교육과 여권 압수 등 통제 역할을 맡았다. 일부 팀장은 직접 채팅 상담이나 텔레마케팅에도 참여한 것으로 적시됐다.

 

실적은 텔레그램 단체방을 통해 매일 보고됐으며, 영장 사유에는 “실적 부진자를 폭행하거나 전기고문을 가했다”는 조직원 진술도 기재돼 있다. 신규 조직원 모집 방식 역시 체계적이었다.

 

인터넷·텔레그램에 ‘고수익 알바’ 홍보글을 게시하거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포섭한 뒤 항공권을 제공하고 공항에서 픽업해 숙소로 이송하는 방식이었다. 임의 탈퇴를 막기 위해 숙소 도착 즉시 여권을 빼앗았고, 탈퇴가 허용되더라도 호텔·인터넷 사용료 등 명목으로 비용의 두 배를 지불하게 했다. 탈퇴 시 휴대전화 공장 초기화 등 보안 조치도 뒤따랐다.


‘강요에 의한 범행’ 주장…재판 쟁점은 강압 수준·탈출 가능성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위한 내부 지침도 존재했다. 근무자에게 개인 계정의 휴대전화나 와이파이 연결을 금지했고 직원 간에도 가명으로만 호칭했다. 이어 사진 촬영이나 영상통화를 금지하고 연락수단은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으로 제한했다. 피해금은 3자 명의 대포계좌를 사용했다.

 

이들 조직은 보이스피싱 범죄로 피해자 110명을 양산했으며, 피해자들에게 93억 5000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유형별로는 로맨스스캠 23명(27억 3000만원) ▲검찰사칭 보이스피싱 21명(59억 7900만원) ▲코인 투자 리딩 사기 57명(4억 6400만원),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 9명(1억 7700만원)으로 적시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부 조직원들은 여권을 빼앗긴 채 실적이 부진하면 고문을 당했다”며 “이들은 ‘강요에 의한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형법 제12조에서 말하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절대적 강요’ 수준에 이르러야 무죄가 인정되는데, 해외 사기 조직 사건에서는 조직원 간 연락 가능성, 외부 통신 가능 여부, 탈출 성공 사례 등이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며 “단순히 여권 압수나 실적 압박만으로는 법원이 강요된 행위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별 피의자마다 실제로 탈출이 불가능했는지,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됐는지 등을 입증할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방어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수사 단계에서부터 강요·협박의 구체적 정황을 일관되게 진술하고, 여권 압수·폭행·감금 여부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재판에서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해외 조직 사건은 공범 진술이 엇갈리거나 실체 규명이 쉽지 않은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강요 여부와 지휘·통제 구조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