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는 범죄자에 대한 처우를 둘러싸고 ‘엄벌’과 ‘교정·재활’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오랜 시간 고민을 이어왔다. 이
논의의 중심에는 항상 가석방 제도가 자리한다. 가석방은 일정 기간 복역한 수형자가 교정 성과를 보이고 재범 위험이 낮다고 판단될 경우 남은 형기를 사회 내에서 보호관찰과 함께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로, 형벌 체계의 예외가 아니라 현대 교정학의 기본 원리에 부합하는 정상적 구성 요소이다.
책임주의와 최종 수단성, 사회적 방위, 재사회화라는 형벌 원리를 고려할 때 가석방은 형 집행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단계적 사회복귀를 돕는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가석방 운영은 법 규정보다 훨씬 제한적이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법은 유기형 1/3, 무기형 20년 복역 시 가석방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실제 심사에서는 형 집행률 70% 이상이 사실상 기준이 되며 70% 미만의 가석방은 매우 드물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자료에서도 가석방자의 대다수가 형기의 70%를 넘긴 뒤에야 풀려난 것으로 나타나 법의 취지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행은 수형자가 교정 프로그램 참여나 모범적 수용생활을 유지할 동기를 약화시키며, 가석방 제도의 핵심 기능인 재사회화 기회를 제한한다. 가석방은 조기 석방이 아닌, 보호관찰과 준수 의무를 동반하는 관리된 사회복귀 제도이다. 가석방자는 의무를 위반하면 가석방이 취소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진적 복귀 방식은 일반 석방보다 재범 방지 효과가 높다.
그럼에도 가석방 심사위원회는 범죄 동기·교정 성적·재범 위험성 등 법률에서 명시한 요소보다 죄명이나 사회적 여론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아, 요건을 충족한 수형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제외되기도 한다. 형벌의 목적은 응보뿐 아니라 재사회화를 포함한다.
사회로의 안전한 복귀를 돕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며, 형벌을 질서 있게 종료하는 체계가 마련될 때 비로소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아진다. 따라서 법이 정한 최소 형기 기준을 실질적 심사 기준으로 삼고 관행적 기준인 형 집행률 70%를 재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가석방 판단 역시 범죄유형이나 여론 중심이 아니라, 교정 성과·재범 위험성·사회복귀 준비 정도 등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가석방 확대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보호관찰 체계의 대폭적 강화가 필요하다. 보호관찰관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충하고, 전자감독 같은 기술적 관리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취업 지원·심리 상담·지역 사회 적응 프로그램 등 보호관찰 인프라를 확장해야 한다. 가석방 전 일정 기간 개방시설에서 사회적응 훈련을 받는 제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가석방자의 사회복귀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가석방 확대는 과밀수용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수용자가 줄어들면 교정 시설의 1인당 처우 예산이 증가하고, 교정·재활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도 가능하다. 실제로 해외 주요 국가들은 다양한 가석방 제도를 적극 운용하며, 일정 요건 충족 시 가석방을 필요적으로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일각에서는 가석방이 피해자의 감정을 소홀히 여기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지만, 형벌의 목적을 피해자의 복수에만 한정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재범을 줄이고 사회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피해자와 공동체 모두에 이익이다. 가석방 확대는 범죄자를 무조건 빨리 풀어주자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경중·재범 위험성·교정 가능성 등을 엄격히 심사하되, 법정 요건을 충족한 수형자에게 과도하게 닫혀있는 문을 합리적으로 열자는 것이다.
가석방 확대는 범죄자에게 관대한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복귀 성공률을 높이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형사정책이다. 엄격한 심사 기준과 철저한 사후 관리가 갖춰진다면, 가석방 제도는 개인의 재사회화와 사회의 안전이라는 두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다. 가석방 제도가 제 기능을 회복할 때, 우리 형사사법 체계 역시 한 단계 더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