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지난 회와 마찬가지로 특정 주제를 정하는 대신 독자분들이 보내주신 개별 질문들에 하나씩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비록 서면으로 질문을 보내주신 분은 한 분일지라도 같은 고민을 품고 계신 분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답변들이 그러한 분들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궁금증을 풀어가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Q. 변호사님, 저는 복역 중에 상대방이 갑자기 예전 일로 고소를 해서 수사 접견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이 흐릿합니다.
세세한 상황까지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는데…. 이런 경우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답해도 괜찮을까요? 괜히 경찰이 제가 일부러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오해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A.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거나 가담 당시 범죄라는 인식을 크게 하지 못해 기억이 흐릿한 경우, 또는 여러 사정이 겹쳐 정확한 시점이나 세부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흔합니다.
조사실에 앉아 질문을 받다 보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을 때 ‘혹시라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떠올리거나 추측에 기대어 답변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조서에 기재된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초기의 진술 내용이 이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날 경우, 진술 전체의 신빙성까지 문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추측으로 진술하는 것은 정말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질문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만을 반복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수사관으로 하여금 조사 태도가 불성실하다고 판단하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억이 일부 흐릿할 수는 있어도, 모든 사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드물기에 현실적인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억이 분명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답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정확한 날짜는 떠오르지 않지만, 해당 행위를 한 사실 자체는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거나 “현금을 인출한 것은 기억나지만, 세부 경위는 시간이 지나 정확하지 않습니다”처럼 기억의 범위 및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를 함께 설명하면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하는 것은 진술의 신빙성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고, 또 추측을 사실처럼 진술하는 것은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조사받지 마시고, 조사에 앞서 반드시 기억을 더듬어 보고 사실관계를 미리 정리해 두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Q. 경찰이 수사 접견을 오겠다고 했는데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일정을 미루고 싶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하면 수사관이 저를 불성실하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사건에서 제가 불리해지지 않도록 대응하고 싶습니다.
A. 수사기관으로부터 사전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조사 일정을 통보받으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에 대해 성실히 소명하고 조사에 협조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준비가 덜 되었다면 아무리 결백한 입장이라도 걱정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데 조사 일정 조정을 요청했다가 수사관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까 봐 그냥 준비 없이 조사를 받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조사 일정은 충분히 조정할 수 있으며, 일정 변경을 요청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변호인을 선임해서 조사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미루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한 번 조사를 미뤘다면, 연기된 기일에는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일 취소나 직전 통보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다시 일정 재조율이 필요할 때는 가능한 한 일찍 수사관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정에 따라서는 무작정 피의자의 권리를 내세우기 보다 담당 수사관과 긴밀하게 협의를 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범이 많은 사건의 경우에는 수사기관 내부에서도 변경하기 어려운 송치 계획이 고정되어 있어서 일정 조율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피의자의 입장만 고려하여 기일을 연기하려 하면 수사관도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사건 진행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겠죠. 당장은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전체 그림을 보면 오히려 득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경험 많은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서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Q. 저는 불구속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정보를 알아보다가 <더시사법률>을 알게 됐습니다. 인터넷 구독을 하며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 상황을 말씀드리면, 경찰 조사를 마친 뒤 수사관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랐는데, 그럼 갑자기 구속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경찰 조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크게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구속영장 신청을 하겠다”고 해도 실무에서 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또 구속 여부는 절차를 거쳐 법원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에 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경찰이 그런 말을 했다면 진짜로 그렇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피의자를 압박해서 빠르게 원하는 답변을 받아내려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걸 당사자가 수사관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답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요.
변호인이 긴밀하게 소통하며 현재까지 수사 진행 상황은 어떠한지, 다른 공범들은 신병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불구속으로 협의를 해볼 여지가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맡은 사건 의뢰인 중에는 처음에는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겠다고 했으나 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적극 제공하는 조건으로 협의하여 현재 불구속으로 수사를 받고 계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다고 해서 바로 구속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바로 법원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경찰의 신청이 접수되면 검사가 구속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검토한 뒤,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합니다.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서는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되며, 피의자는 직접 출석하여 진술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절차가 모두 끝난 뒤에야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지 기각할지 최종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경찰이 언급한 ‘신청’ 단계와 실제 구속까지는 여러 절차적 단계가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피의자에게는 충분히 변론하고 사정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다만 경찰이 아무 이유 없이 피의자를 압박하진 않으므로, 쉽지 않은 상황에 있으신 것은 분명합니다. 형사 절차를 앞두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조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셔야겠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마주하는 낯선 상황들은 누구에게나 버겁게 다가오며,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큰 불안을 느끼기 쉽습니다. 오늘 다룬 내용이 그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앞으로 이어질 절차를 보다 차분하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구체적인 대응 전략은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전문적인 조언을 받아보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더시사법률> 독자 여러분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