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 변호사, 이 사건 당사자가 너무 억울하다고 하는데, 구치소 가서 이야기 한번 들어보겠나?”
로펌에서 어쏘 변호사로 지내던 어느 여름날, 파트너 변호사의 권유로 사건 하나를 맡게 되었다. 사건 자체는 간단했다. 컴퓨터 수리기사가 고객의 집에 가서 컴퓨터를 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객에게 ‘위계에 의한 간음’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피고인은 1심에서 법정 구속이 되었고(피고인은 스스로는 너무나도 떳떳했기 때문에 이를 별도로 회사나 가족 등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억울한 마음에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해 줄 변호사를 찾아 나선것이었다. 우선 판결문을 확인했다.
그런데 얼추 봐서는 피고인의 잘못으로 해석될 여지가 너무 많았다. 동료 변호사들과 논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2심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이미 1심에서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도 진행했고, 그 피해자의 진술 역시 일관적이었다. ‘이를 어쩐다….’ 심란한 마음을 품고 의뢰인을 만나러 구치소로 향했다. 피고인은 역시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피고인의 말에 사건을 뒤집을 만한 요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피고인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있었고, 일관성도 뚜렷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 눈빛 또한 흔들림이 없어 진실한 마음으로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분명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지나가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 피고인의 말이 사실이고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성적으로 접근한 배경에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부지런히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두꺼운 기록 속 논리의 허점을 찾아 헤맸다. 범행 현장의 위성지도를 살폈고, 주변 상황 및 컴퓨터 수리기사의 업무 절차를 분석하고, 피해자의 과거 전력을 찾아냈다. 정말 치열하게 자료를 검토했다.
관련 사례에 대한 판례 역시 부지런히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에 이어 하급심 판결,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례까지 부지런히 뒤져서 해당 내용을 인용하였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본인이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 책임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를 의미한다.”이에 따라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고 충분히 자기 의사에 따라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의 경위를 분 단위, 초 단위로 분석하였다. 피해자의 말대로라면 피고인이 강제로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것인데, 피고인은 수리기사로서 이후에 담당 기사의 신원을 밝히는 해피콜이 가게 되어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피고인이 뻔히 신원이 드러날 것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범행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음을 주장했다.
더군다나 피해자의 아버지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범행 장소인 피해자의 집은 바로 옆집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변호인 의견서를 열심히 준비하고 2심에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세워 신문할 것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이미 증인신문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증인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 이 사건에 대한 법정 내 프레젠테이션을 하겠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해당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그 15분을 위해 수개월의 시간을 투자하여 수십 페이지의 발표 자료를 준비하였고, 해당 공판기일에서 우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전달했다. 여러 시각적 자료와 관련 문헌 등을 통해 재판부를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재판부가 고개를 끄덕이는 등 우리의 주장에 일면 공감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가온 선고기일. 아쉽게도 무죄가 선고되지는 않았으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일부 사정 등’이 참작되어 집행유예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의뢰인의 가족과 나는 얼싸안으며 그 결과에 대해 기쁨을 표했고, 며칠 후 구치소 밖에서 만난 피고인의 표정에서는 홀가분함과 후련함을 읽을 수 있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피고인이 생각난다. 과연 실체적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피고인은 정말 억울함을 벗어난 것일까. 무죄를 받아낸 것은 아니니 아직 억울함이 남지는 않았을까. 피해자는 이 판결 결과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정말 올바른 일을 한 것인가.
그러나 기록에 새겨질 형사처벌을 앞두고 누군가의 삶을 구명하기도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기에, 나는 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앞으로도 내가 만날 이들을 위해 최선의 변론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