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느껴질 때다. 처음에는 설명하려고 한다. 억울하다는 말도 하고,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말들이 실제 기록으로 남고,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역으로 질문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몇 번 겪고 나면 사람은 깨닫게 된다. 말을 할수록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을.
필자의 의뢰인도 그랬다. 질문을 던지면 대답은 했지만, 더 자세한 설명은 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수심이 드리워진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 불리해진다는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의 태도였다.
이미 여러 번 설명해 봤으나 그때마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걸 느낀 듯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수를 줄인 게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의뢰인의 그 선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형사사건 변호를 하다 보면 억울함에 이것저것 말을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는 이들도 종종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사건을 수임하게 되면 사건 기록보다 먼저 의뢰인의 태도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억울하다고 계속 말하고, 어떤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정반대 케이스처럼 보이지만, 이 두 유형에는 공통점이 있다.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누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줄까?” 사건 조사가 시작되면 피의자들은 지난한 수사 과정을 겪으며 자신이 뱉은 한 문장이 조서에 남고, 그 문장이 의도와 다르게 읽히고, 그게 또 다른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된다. 수사 기관의 질문이 반복될수록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하는 망설임에 말을 하기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최소한의 대답만 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 과정을 몇 번만 겪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아끼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게 마치 법적 처벌의 기로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만한 대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변호사지만 처음부터 결론을 묻지 않는다. 인정할 건지, 다툴 건지, 어떻게 갈 건지. 그 질문들이 조사받는 이에게 얼마나 무겁게 다가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이미 한 번 꺾인 사람에게 다시 방향을 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론은 대부분 후회로 남는다. 특히 수감된 상태로 재판에 임하는 경우 더 그렇다. 신체의 자유를 빼앗기고 구속이 된 이상, 이들에게는 말이 무기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이 이들의 약점이 되는 순간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내게 “이제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많이들 묻는다. 그 말 속에는 체념도 있고, 경계도 있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섞여있다. 하지만 조용히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안에서 곪는다. 억울함이든, 후회든, 분노든. 어디에도 꺼내지 못한 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를 바꾸며 안에서 커진다.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형사사건은 사실보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록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먼저 듣는다. 정리된 이야기가 아닌,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중간에 멈추는 말, 자꾸 반복되는 말부터 듣는다. 그 안에 중요한 이유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아마 당신에게도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더 불리해질 것 같아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많이 버텨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정리되지 않아도 된다. 잘 쓸 필요도 없다.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기억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적어도 된다.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는 한 번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는 항상 결론부터 묻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보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본다. 그 이유를 알아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다면 이제는, 적어도 한 번은 꺼내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