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순간부터 아이는 혼자”…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수용자 자녀 사각지대 알린다

수용자 17.4%가 부모, 14.1%는 연락 두절
절반 이상 사회적 편견 체감‧부모 수감 숨겨
현장 작동은 과제…세움, 서명 캠페인 전개

 

부모가 체포되는 순간 아이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끼니 해결부터 위생, 정서 돌봄, 안전까지 삶의 모든 영역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그러나 수사 과정 어디에도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다. 부모가 교도소로 향하는 사이 아이는 그대로 집에 남겨진다.

 

지난 30일 서울 영등포구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사무실에서 만난 이경림 대표는 “부모의 체포는 아동에게도 즉각적인 생활 붕괴를 초래하는 사건”이라며 “그럼에도 아이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절차는 수사 과정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용자 자녀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몫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체포의 순간, 홀로 집에 남겨진 아이들


세움이 지원해 온 사례에는 보호 공백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부 아동은 수개월 동안 성인의 보호 없이 생활했고, 형제 돌봄을 전적으로 떠안거나 1년 가까이 방치된 뒤에야 발견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수사 단계에서 아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전무하다”며 “아동을 발견하는 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기는 구조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함께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법무부가 전국 교정시설 수용자 5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7.4%가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었고 수용자의 미성년 자녀 수는 1만4218명으로 집계됐다. 수감 전 자녀와 함께 생활한 비율은 72.2%였지만, 수감 후에도 대면 접촉을 유지하는 비율은 31.8%에 그쳤다. 14.1%는 부모와 완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이지선 세움연구소 소장은 ‘2025 INCCIP 제4회 국제컨퍼런스 국회포럼’에서 “생활비 대부분이 주거비로 소진되면서 아동들이 끼니를 거르는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며 “체포·구속 단계에서 미성년 자녀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 보호 체계로 연계되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회 문턱에서 멈췄던 보호 논의


수용자 자녀 보호를 위한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다. 21대 국회에서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돼 교정시설장이 신입 수용자에게 미성년 자녀 보호 조치 의뢰 가능성을 고지하고, 접촉 차단 시설이 없는 공간에서 자녀와 접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움과 교정복지 전문기관 세진회가 수용자 자녀 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4%는 사회적 편견을 체감했다고 답했고, 71%는 부모의 수용 사실을 숨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아버지의 체포 사실을 털어놨다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경림 대표는 “이 법은 범죄자를 돕기 위한 법이 아니라 보호자가 갑자기 사라진 아이들을 국가 책임 안으로 끌어들이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며 “체포 순간부터 아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은 통과됐지만, 현장은 아직


 

세움은 체포·구속 시 피의자의 미성년 자녀 여부를 즉시 확인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계기로 시민 서명 캠페인 ‘혼자 남겨진 아이들’을 본격화했다.

 

법안 통과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고 보완책을 요구하겠다는 취지다.

 

세움은 경찰 체포 단계에서 자녀 확인이 형식에 머무르지 않도록 구체적인 실무 매뉴얼 마련과 지자체·아동보호전문기관 연계 체계 구축을 촉구하고 있다. 현장 수사관이 미성년 자녀 존재를 확인한 뒤에도 즉시 보호 체계로 연결되지 않으면 법 개정의 취지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캠페인은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세움은 시민 1000명의 서명을 모아 법안 발의 의원들과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하위 법령과 시행 지침 마련 과정에 시민 의견을 반영하고, 체포 순간부터 아동이 보호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구조를 제도화하는 데 힘을 보탤 방침이다.


 이경림 대표 일문일답


 

Q.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수용자 자녀’ 개념이 처음 법에 명시됐습니다.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A. 2015년 세움이 설립될 당시만 해도 ‘수용자 자녀’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재소자 자녀’, ‘범죄자 자녀’ 등 표현이 제각각이었고, 아동복지 체계에서도 보호 대상군으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수감 사실을 숨기며 도움을 요청할 창구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수용자 자녀의 인권 보호와 지원이 법에 명시되면서, 이 아이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의 주체로 처음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Q. 국가 책임의 범위는 어떻게 달라진다고 보십니까.

 

A. 법에 ‘수용자 자녀’라는 용어가 들어가면서 제도 밖에 있던 아이들이 행정과 정책의 대상으로 편입됐습니다. 국가는 이들의 인권 보호와 지원을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법으로 명시한 것입니다.

 

다만 법은 1년 뒤 시행되기 때문에 2026년까지가 실질적인 골든타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아이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Q. 개정안에 포함된 미성년자 접견 지원, 주거지 고려 수용자 이송 조항이 절실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A. 서울에 사는 동희는 부산에 수감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당일치기가 어려워 숙소까지 지원해 두 차례 면회를 하도록 도왔습니다.

 

또 중학생인 민지와 초등학생인 민재 남매는 인천까지 갔지만, 접견 기준이 ‘만 13세 이하’로 적용돼 민지는 면회를 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규정과 현장 운영의 괴리가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게 안타깝습니다.

 


Q. 시민 서명 캠페인 ‘혼자 남겨진 아이들’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습니까.

 

A. 아이들이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시점은 체포 직후입니다. 그러나 보호 체계는 부모가 교도소에 수용된 이후에야 작동했습니다.

 

체포부터 수감까지 수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은 아무런 제도적 보호 없이 방치됩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체포 단계에서 자녀 유무를 확인하고 보호가 필요하면 즉시 지자체에 연계하도록 한 법입니다.

 

서명 캠페인은 이 법이 형식이 아니라 실제 보호로 이어지도록 감시하고 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Q. 개정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교도관 인력 부족과 과밀 수용 문제를 함께 풀지 않으면 법은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교도관들은 이미 수용자 관리만으로도 과중한 업무를 떠안고 있습니다.

 

인력 확충과 함께 교육이 병행돼야 하고, 수용자 자녀 보호 역시 교정 행정의 일부라는 인식이 현장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법이 종이 위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