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형을 산지 2년이 되어가는 수용자입니다. 올해 40세이고, 동갑내기 아내와의 사이에 6세 남자아이를 두었습니다. 현재 안양교도소 취사장에서 수용자들의 밥과 국을 만드는 ‘주걱조’에 속해있으며, 국과 찌개를 담당하는 기결 출역수입니다.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감정이 격앙된 채 쓴 아내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아내는 남대문시장에서 장인, 장모님과 함께 아동복 제조·판매업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되면서 자기도 버텨보다 더는 장사를 유지하기 힘들어 개인회생 절차를 밟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들이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계속 힘들게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장사를 하다가 폐업한 후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갔고, 아내는 집에서 육아를 하다가 다시 야시장에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일마저도 못 하게 되었다 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난 왜 사기 조직의 출금책을 한 걸까?’, ‘왜 내가 한 걸로도 모자라 지인에게 일을 소개시켜 주기까지 했을까?’ 엄마가 힘들면 아이의 세상은 무너진다는데, 이 편지를 받은 후 며칠간은 죄 지은 것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걱정에 빠져 자괴감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낙심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소 내 취장 담당 교도관이신 박정수 계장님이었습니다. 계장님은 “후회를 반복하면 후회와 친해져서 또 실수하게 되지만, 어렵고 힘들어도 좀 더 잘한 선택, 올바른 선택을 붙잡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거다”라며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취장 내 50여 명의 출역수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매일 이런 격려의 말을 나눠주셔서 마인드셋을 바꿔주셨습니다. 저는 저 말이 마음에 와닿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소에서 진행하는 ‘취약계층 미취학 아동 지원사업’도 신청했고, ‘독학사 학사 과정’에도 지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장님은 제가 원활하게 사업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많이 알아봐 주시고 접수와 지원은 문제없이 잘 이루어졌는지 몇 번씩이나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위 미취학 아동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도움으로 제 아이는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도 가질 수 있게 됐고, 겨울나기를 위한 두꺼운 새 옷도 생겼습니다. 폐업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아내도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했고, 노령의 부모님들은 큰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같이 좋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취장 담당인 박정수 계장님은 많이 바쁘십니다. 계장님은 매일 취사장이 춥지는 않은지, 바닥이 얼어 미끄럽지는 않을지 살피십니다. 또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취사장 출역수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두루 살피시면서 이들이 과거는 잊고 건강한 꿈을 꾸며 더 나은 모습이 되어 무사히 출소 할 수 있게 정말로 노력하십니다.
계장님은 가끔 우스갯소리로 “나는 여기 20년도 훨씬 넘게 있었는데, 여기 나보다 오래 있었던 사람은 없지 않으냐”고 하시곤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을 사람이니, 이곳에서 잘 있다 먼저들 가세요”라고 덧붙이시면서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는 바야흐로 이곳에 와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사명감으로 헌신하며 근무하시는 박정수 계장님과 전국의 모든 교도관분들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