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의뢰인은 검사가 징역 5년을 구형한 강간 사건의 피의자였다. 지인 사이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이라는 점, 피해자의 진술이 존재했다는 이유로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기소되었고, 이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내가 기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사건은 이미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피고인은 그 흐름 속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구조는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기록을 따라갈수록 이 사건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인 간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유리한 증거의 확보와 피해자 진술 신빙성의 탄핵이다. 하지만 대개 물적 증거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결국 재판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나게 된다.
나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갖는 무게와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면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술의 신빙성은 선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검증을 통해 비로소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수사기관의 태도였다.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피해자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는 점을 전제로 사건을 구성해 나간 것은 아닌지, 그 진술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는 노력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고 함께 숙박시설에 들어갔다가 함께 나왔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확인되었다. 그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강간으로 고소가 이루어진 사건이었기에 숙박시설 출입 과정에서의 행동, 동선, 태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CCTV 확보는 매우 중요한 수사 절차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록 어디에도 그러한 시도는 남아있지 않았다. CCTV가 존재했는지, 확보가 가능했는지, 왜 확보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진술을 교차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비어있었고, 그 공백은 그대로 공소사실의 토대가 되어있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의 수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판단했다. 또한 이 사건이 단순히 한 사람의 진술 신빙성만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수사 단계에서 객관적 증거 확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일수록 재판에서는 그 공백을 피고인의 해명 책임으로 메우려는 구조가 형성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 역시 초기에 놓친 수사의 공백을 재판 단계에서 바로잡지 못한다면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최후진술의 방향을 분명하게 정했다. 피해자 진술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대신 그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재판부에 묻고자 했다.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충분한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에 부딪힌 것인지, 아니면 그 과정 자체가 생략된 것인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재판부는 내 주장을 받아들여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하나씩 검토한 끝에 피해자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고 항소심에서도 그 판단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검사가 징역 5년을 구형했던 사건이었지만 최종 결과는 무죄 확정이었다. 이 사건을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지인 간 성범죄 사건일수록 감정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수사와 재판의 구조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증거가 있었는지보다 어떤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결과를 좌우하는 사건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면식이 있는 지인 사이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은 더욱 신중하고 정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수사와 재판 구조를 경험으로 알고 있는 변호사가 개입하는 것만으로도 사건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