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유죄가 나올 수 있습니까?”
성범죄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자주 제기하는 질문이다. 성범죄는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나 명확한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역시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피해자의 성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범행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 9. 7. 선고 2020도8016 판결).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면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설령 법정에서 진술이 번복되더라도 이는 가해자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나 가족의 압박 등 성범죄 피해의 특수한 사정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경위를 신중히 살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20도2433 판결).
이러한 법리는 성범죄 피해자의 현실을 고려해 마련된 것이다. 피해자가 사건 직후 즉각 신고하지 않거나, 가해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등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취지다. 피해자의 반응이 획일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판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법리가 실제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다른 정황 증거와의 관계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사건 이후 가해자와의 연락 내용이나 주변 상황, 사건 전후의 행동 등 객관적 정황이 진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은 ‘무죄 추정’과 ‘증거재판주의’다. 피고인의 유죄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그 진술이 다른 증거들과 어떻게 부합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성범죄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시각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