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이 형사 재판을 받는 상황은 언제나 사회적 관심과 정치적 논쟁을 동시에 불러온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 역시 헌정사와 법치주의의 의미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법 앞에서 예외가 없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치적 갈등을 넘어 제도적 성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3년간 판사와 법무부 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JM 정재민 대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핵심을 “여론이나 정치적 분위기가 아니라 법과 증거에 따른 판단이 이루어지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 때문에 더 엄격하게 보거나 반대로 특별히 관대하게 볼 이유도 없다”며 “일반 형사 사건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사법부의 신뢰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최근 형사 사건의 특징으로 보이스피싱과 투자 사기 같은 구조적 범죄의 증가를 꼽으며 “형사 재판이 단순한 처벌을 넘어 피해 회복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까지 함께 다루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정재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Q.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형사
우리나라의 수사와 재판은 서면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현실상 판사는 일주일에 수십 건의 사건을 재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쪼개서 만나고, 하나의 사건을 짧게는 반년, 길게는 1-2년씩 재판하며, 인사이동 때마다 판사가 바뀐다. 그러니 어느 한 기일에 한 순간 말을 잘 해서 좋은 인상을 주더라도 판사가 다 기억해서 재판에 반영하기 어렵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고 판결문을 작성할 시점에는 대부분 기억과 인상은 휘발되어 희미해지고, 사실상 대부분 기록에 적힌 글들만 보고 판결한다. 그래서 좋은 재판 결과를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록에 남아있는 글이다. 다른 글을 잘 안 보는 판사도 변호사 의견서는 꼼꼼하게 본다. 전관예우도 사라진지 오래라고들 하므로, 좋은 글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판사, 검사, 수사관의 마음을 1센티미터라도 더 움직이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한다. 판검사든, 행정부 공무원이든 간부가 되면 다른 직원이 쓴 초안을 수정, 가필하는 일만 하게 되는데 이렇게 몇 년만 지나도 직접 글을 쓰기 힘들어진다. 요즘은 인공지능으로 서면을 쓰는 경우도 많다지만 인공지능이 쓴 글은 여전히 헐겁다
'불성실하다', '내 사건에 관심이 없고 잘 안 챙기는 것 같다', '열심히 안 한다', '연락도 안 된다', '처음 선임할 때와 선임한 이후가 너무 다르다'. 사람들로부터 변호사에 대한 불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런 문제들이 변호사의 성의와 품성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변호사가 되어보니 이 문제들은 상당부분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예외도 적지 않으니, 모든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받으면 로펌에 일부를 낸다. 이 돈으로 로펌은 어쏘 변호사나 비서의 월급, 사무실 임대료, 마케팅 비용, 기타 관리비를 낸다. 그리고 남은 금액의 일부를 사건을 수임해 온 변호사나 직원에게 준다. 그다음에 남은 금액을 그 일을 수행하는 변호사들이 나누는 구조다. 사건을 수행하는 변호사가 남은 금액을 가져가더라도 여기서 소득세도 공제해야 한다. 결국 주 수행 파트너 변호사조차 애초 수임료의 10%도 못 가져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대표나 파트너 변호사들은 한 달에 일정 정도의 사건을 수임해야 집에 가져갈 생활비를 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을 쪼개
변호사가 되고 난 뒤에 보니 사무실에 ‘내 것’이 많아졌다. 공직 생활 때는 그곳에 있는 책상도, 컴퓨터도, 필통과 연필, 액자 속 그림 그리고 슬리퍼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나를 도와주는 직원들도 내가 뽑은 것이 아니고 내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취향이 반영된 사무실에서 내가 산 슬리퍼를 신고 지낸다. 직원들도 내가 뽑았고 매달 내가 월급을 준다. 변호사가 된 뒤 또 하나 큰 변화는 사람들과 인연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직에 있을 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는다기보다 ‘업무의 대상’으로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나니 나를 찾는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특히나 피해자인 의뢰인이 찾아올 때면 그 인연의 소중함이 더 느껴진다. 의뢰인들은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변호사를 찾는다. 그들은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그것은 때로 비밀이기도 하지만 비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믿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을 내게 털어놓는다. 내가 위로하고 믿음을 주면 피해자들은 더 큰 힘을 낸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 좌절감, 아픔을 나 역시 느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나는 아침에 동네 헬스장을 방문해 간단한 운동을 한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사무실로 출근하는 게 일상이다. 공직에 있을 때는 출근길 차 안에서 항상 뉴스를 틀어놨지만 지금은 주로 팝이나 가요 같은 음악을 듣는다. 왕복 8차선을 지나 사무실 건물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에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변호사로서의 하루를 시작하는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사무실에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창밖 너머로 검은색 블랙박스처럼 생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청사도 보인다. 늘 같은 건물이었을 터인데 최근 검찰권이 약화되면서 어쩐지 과거보다 건물이 작아져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요즘 나를 보면 첫 마디가 대개 “변호사 되니 좋아?”이다. 나는 “자유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대답한다. 공직에 있을 때는 실제보다 더 반듯한 사람인 양 신뢰 받았었다. 일은 마치 패키지여행의 일정표처럼 세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공직 생활을 하며 구사할 수 있는 선택지는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음악 선율처럼, 화가가 붓을 들고 캔버스 위에서 구사하는 색조처럼 다양하고 풍부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지
나는 정신 분석을 소재로 한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를 쓰는 2년 동안 실제로 정신 분석을 받았다. 네덜란드 국제 재판소에 파견 갔을 때에도 융 계열의 분석가에게 1년 반 동안 정신 분석을 더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가 직접 분석가가 되어 보려고 트레이닝 과정에 들어갔지만 본업으로 야근을 하는 일이 많아져서 중도에 하차했다. 정신 분석가는 내담자의 입장을 무조건 지지하며 편들거나 섣불리 내담자의 감정에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내담자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윤리적으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정신 분석가가 곁에서 지지해 주는 덕분에 내담자는 바다로 뛰어든 다이버처럼 점점 더 깊은 내면의 공간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된다(나는 이번에 길리섬에서 생애 첫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했는데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숙련된 현지인 파트너 ‘안안’이 곁에서 잘 이끌어 준 덕에 바다 밑바닥에서 거북이와 나란히 헤엄을 치기도 했다). 내담자가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분석가는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내담자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준다. 그 힘은 상대를 깊이 존중하는 가운데 적절한 반응과 지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평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조력량 공식이 있다. “변호사의 조력량 = 변호사의 능력 X 사건에 투입하는 시간”이다. 변호사의 능력은 경력, 연차, 처리한 사건 수에 대략 비례한다. 위 공식에서의 ‘변호사의 능력’은 상담만 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실제 일하는’ 변호사의 능력을 말한다. 만약 고객이 처음 상담했던 대표 변호사나 파트너 변호사는 경력이 20년 차이지만 실제 대부분의 일을 1년 차 변호사가 한다면 그 변호사의 능력이 조력의 총량을 결정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도 초래한다. 어떤 환자가 의과대학 교수가 수술하는 줄 알고 수술대에 올랐는데 실제 집도는 대부분 1년 차 전공의가 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부분은 고객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고, 법조계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한편,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재판을 준비하지 못하면 실력 발휘를 할 수 없다. 모든 변호사에게 똑같이 하루에 24시간, 한 달에는 30일만이 주어져 있다. 현재 진행하는 사건이 30건이라면 그것을 30분의 1만큼 쏟을 수 있을 것이고, 100건이면 100분의 1만큼 쏟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명의 변호사가 동시에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이라는 획기적인 소설을 냈을 때,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가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더시사법률이 창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또 “지금까지 우리를 위한 신문은 없었다”는 창간 호의 캐치프레이즈를 보았을 때, 그 ‘건전지의 발명’을 떠올렸습니다. 반짝반짝 한 아이디어와 폭발력 때문이었습니다. 왜 이런 신문이 없었을까. 더 놀란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기존 신문 내용을 대강 짜깁기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뜻밖에도 내용이 알찼습니다. 이런 수준의 신문을 이렇게 자주 낼 수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역시 구독자 수의 가파른 증가는 파죽지세였습니다. 겨우 1년밖에 안 되었나 싶습니다. 그 초기부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이고 보람이었습니다. 2년 차에는 ‘자동차의 발명’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전을 기대합니다.
구속된 수용자의 변호를 맡는 경우 대개 가족이 찾아와서 선임 계약을 한다. 구속된 사람이 가족이나 믿을 만한 조력자가 없으면 좋은 변호사를 찾아서 선임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변호사를 찾으려면 이곳저곳 알아보러 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평판도 조회하고, 직접 변호사들을 만나 보기도 하고, 수임료 흥정도 해야 하고, 수임료 대납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가 않다. 사실 가족이라도 이런 일을 다 해 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속이 되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극도로 제한된다. 밖에서 제아무리 잘 나갔고, 돈과 권력이 있었고, 똑똑했더라도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수의를 입고 수감되면 무기를 빼앗기고 포로가 된 장수처럼 무력화된다. 그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솟아오르기도 한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좁은 공간에 갇히는 것 자체로 형벌을 받는 듯 괴로울 것이다. 그만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은 이런 감정적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하루하루 새로운 일상을 살고 헤쳐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수용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