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되어 보니, 재판장과 인연이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를 찾아서 일종의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본다. ‘재판장과 말이 통하는’ 변호사를 찾는다고도 한다. 여기서 ‘말이 통한다’는 것은 재판장과 사적으로 잘 알아서 전화를 걸거나 따로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판사들 숫자도 적어서 서로 가까웠고,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현직 판사들과 술 한잔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사건을 좀 더 잘 봐주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 3천 명이 넘는 판사들이 있어서 동기라도 서로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요즘 판사는 정년까지 법원에 머물러 있는 추세이다. 판사들 입장에서는 변호사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은 마당에, 잘 알지도 못하는 판사 출신 변호사라고 괜히 형량을 깎아주고 승소시켜 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도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현직 판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판사들이 재판하는 사건을 수임한다고 해서 잘 봐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입장에서도 사건 이야기를 하는 순간 관계가 어색해지고 체면이 깎인다. 이것이 현실이다.
간혹 재판장이 내 동기라고 해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도 나는 이 이야기를 다 하고, 결국 서면을 잘 쓰고 변론을 잘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판사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아무래도 판결문을 쓸 때 생각하는 점들을 좀 더 잘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 판사와의 관계를 이용해서 재판 결과를 더 좋게 만들어줄 것처럼 현혹해서 고액에 수임하는 것은 사기이다.
한 지인이 전관예우를 생각하고 부장판사를 막 마치고 개업한 변호사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객이 재판장 이름을 말하자 그 변호사는 허허 웃으며 “내가 그 판사 잘 알지!”하며 오늘 중에 재판부에 전화하겠다고 연방 싱글벙글 웃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를 재판부에 신청할 때마다 재판장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기각하더니 결과도 아주 안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재판부에 전화했냐’고 물으니, 당황해하면서 이제는 그 재판장과 자신 사이에 공통으로 잘 아는 판사가 있는데 그 판사에게 전화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내 고객이 전관예우가 통하는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한 적이 있는데, 그는 자신을 수임하면 단둘이 만나 소주 한잔을 하면서 사건 부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그 재판장은 아주 엄정한 처신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 만남을 가질 리도 없고, 격무에 치여서 그럴 시간조차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고객에게 ‘그 변호사한테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식당에서 만났는지를 알려달라고 해보라’니까 수임료를 돌려주었다고 했다.
과거 한 고객은 아들이 얽힌 조직적 사기 사건을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가 아예 다 없던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해서 5천만 원에 선임했었다.
결국 고소장의 피해액은 1원도 줄어들지 않고 모조리 기소되어 실형을 받았다. 아들의 접견을 갔더니 그는 “우리(사기 조직)보다 변호사들이 더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나도 같이 씁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