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장관님, 청장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26년째 수용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무기수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은 죄의 무게를 가슴에 새기며, 오직 한 가지 희망—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도 못한 상태로 수감되었지만, 이후 검정고시 합격, 방송통신대 재학, 수십 개의 상장과 자격증 취득 등 자기계발에 전념해 왔습니다. 더불어 법무부 소속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도 출전해 입상한 바 있습니다. 그간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7년 전부터 최상위 등급인 S1·R1 등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단 한 번의 징계 없이 규율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중관리대상자’라는 분류 하나만으로 모든 처우 심사에서 자동 제외되고 있다는 현실 앞에 절망을 느낍니다. 자율사동, 중간처우의 집, 희망센터, 자립금 지급, 확대전화처우, 가족 접견 기회 등은 모두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를 위한 제도입니다. 그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죄명만이 아닌 수형생활의 실제 행적을 기준으로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한 엄중관리대상자에 한해서는 최소한 심사의 기회라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보안상 우려가 있
환한 대낮,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빛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훌쩍거렸다. “왜 나는 매번 떨어지는 걸까? 이대로 취업 한 번 해보지 못하는 걸까?” 온갖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바닥 한가운데 누워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벌컥— 엄마는 늘 그렇듯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 왜 또!”라며 이불 안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내 귀만 아팠다. 어둠을 뚫고 방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엄마는 이불을 확 걷었다. “일 나라!” 방문 너머 비치는 거실 전등 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실로 나가자 검은 비닐봉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치 냉장고를 열어 김치통을 꺼내고, 싱크대에 물을 받아 상추와 깻잎을 담그며 말했다. “삼겹살 3만 원어치 사 왔다! 먹자!”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나는 잔뜩 신난 듯한 엄마가 아니꼽게 보였다. 명치가 아플 정도로 속에 꽉 찬 이 답답함을 불효막심하게도 엄마에게 풀 심산이었다. 그때, 저절로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가 갑자기 허공에 뒷발차기를 하는 게 아닌가… 육중한 몸매의 엄마가 짧은 다리를 뒤로 뻗어 두어 번 휙휙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대한민국 국적 회복을 신청한 40대 남성에게 병역 기피 의도가 있다며 이를 거부한 법무부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A 씨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국적 회복 불허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국적 회복 불허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 씨는 대한민국 국적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다 2022년 만 35세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국적법에 따라 한국 국적을 상실한 뒤 곧바로 국적 회복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병역 기피 목적이 의심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A 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 씨가 병역법상 입영 의무가 면제되는 만 36세 이후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았고, 병역 회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많다며 병역 기피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A 씨가 10대 시절부터 외국에서 생활하며 학업과 연구를 이어온 점, 외국인 등록과 체류 자격 변경, 전문연구요원 편입 시도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단순한 의심만으로 국적 회복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
누구나 어려웠던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시절, 우리집도 풍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한 지방 대학에 합격한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고, 아빠는 일을 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다녔다. 엄마가 보내주는 용돈은 아무리 아껴 써도 금방 바닥났다. 학교생활은 과 대표를 맡을 만큼 적극적이고 재밌게 했다. 하지만 지방대에 다닌다는 열등감이 나를 붙잡았다. ‘더 열심히 공부할 걸’ 하는 미련 속에서 1학기를 마치고 집에 올라왔다. 6월의 초여름, 느즈막한 시간에 한 친구가 날 찾아왔다. 나와 같이 미술학원을 다닌 친구는 좋은 대학에 진학한 후 그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입시 다시 해보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게. 같이 해보자!” “입시를 또 하라고? 그것도 반수를? 난 자신 없어.” 그렇게 돌아섰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아빠도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엄마, 아빠에게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는 너밖에 모르니?” “아직도 미술학원비가 80만 원이나
20여 년 전,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어떤 여자 둘이 말을 건네왔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어찌어찌 이야기가 오갔다. 내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던 한 여인이 물었다. “요즘 집에 안 좋은 일 있죠? 그거 본인만 해결할 수 있어요.” 건강했던 동생이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데다 엄마, 아빠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풍전등화일 때였다. 솔깃해진 나는 겁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날이 컴컴해진 지 오래여서 중간에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선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겼다. 나는 곧바로 도인처럼 보이는 남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희미하게 켜진 촛불 몇 개, 책상에 펼쳐진 한자 가득한 책, 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거라는 조상님들 얘기까지, 모든 것이 내가 잘못된 곳에 왔다는 걸 대변했다. 그제야 빠져나갈 궁리를 했지만 당장은 어려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미 제사상이 차려졌다고 말했다. 제사상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여하튼 조상님을 위한 것이며, 나는 가진 돈 전부를 내놓은 뒤 절을 올리면 된다고 했다
창문 밖으로 온 세상을 다 덮을 듯, 내리는 새하얀 눈을 보고 있으니,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로 나의 사랑하는 딸과, 아내. 눈 내리는 걸 좋아했던 아내.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는 딸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던 나. 지금쯤 길을 걸으며 당신은 딸의 손을 잡고 걷고 딸은 이곳저곳 자신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겠지. 보지 못해도, 보이지 않아도 당신과 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다시 보려면 수많은 날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딸 사진 뒷면에 편지를 쓰고, 당신과 딸을 생각하며 어렵게 잠을 청한다. ○○○교 아기 잠만보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은 헌정사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이다. 탄핵을 촉발한 12·3 비상계엄 선포 후 122일 만이다. 헌법재판소는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날 오전 11시에 선고를 시작해 22분 동안 선고 내용을 낭독하고 11시 22분에 윤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선고 때는 25분, 박 전 대통령 때는 21분이 걸렸다. 헌재는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1인 및 방통위 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만이 진행 중이었고, 피청구인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법률안들은 피청구인이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포를 보류하여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다"며 "따라서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의 권한 행사가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행사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충북 충주에서 구치소 교도관을 사칭, 물품 납품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려 한 사례가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충주구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충주의 한 정미소 주인 A 씨는 충주구치소 소속 교도관을 사칭한 남성으로부터 식자재(쌀) 납품 의뢰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충주구치소가 물품 구매를 추진하는 내용의 공문서를 사진으로 찍어 A 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 공문서에는 집행 가격과 담당 교도관 이름 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남성은 A 씨에게 방검복 대리 구매도 요구했다. 기존 방검복 납품업체와 단가가 맞지 않아 다른 업체를 소개해 줄 테니 대신 구매해 납품해 달라는 것이다. 이어 업체 계좌로 송금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수상히 여긴 A 씨가 충주구치소에 확인 전화를 하면서 이 남성의 사기 행각이 드러났다. 구치소 관계자는 “A 씨가 직접 확인 전화를 해 다행히 금전적인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현재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 같은 교정 기관 사칭 사기 사건이 전국적으로 잇따라 지난달 중순부터 최근까지 5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실제 금전 피해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는 전언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여기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아무렇지 않아지는 날이 올까. 이제는 네 얼굴조차 가물가물 하다고 덤덤한 척,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 네가 생각나고 네가 너무 보고 싶고 네가 너무 그립고 그때의 우리가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우리가 어쩔 줄을 모르겠고 나는 아직도 그래! 너는 어때, 잘 지내? 나 없이도.
교도소에 수감된 지 10개월째입니다. 여전히 저는 어머님께 연락 한 번을 못 드리는 겁쟁이입니다. 면회 오시겠다는 어머님을 못 오게 하고, 아직은 어머님을 뵐 용기가 없다고 피하기만 하는 못난 아들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너무도 보고 싶고 불러 보고 싶은 어머님이지만 좁은 면회실에서 죄수복을 입고 마주할 자신이 없고, 그런 어머님의 우시는 모습을 볼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기에 이렇게 먼저 용기 내어 글을 보냅니다. 엄마, 저 때문에 아파하지 마세요.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정말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엄마, 제가 나가는 날까지 제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