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9일 자 뉴스에 이런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네가 모셔라” 자식 다툼에 흉기 휘두른 90대 아버지.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90대의 노인이 자신의 부양 문제를 놓고 다투는 딸들을 보고 격분해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노인(당시 95세)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인은 미국 시민권자로, 큰딸 집에 모인 자식들 중 큰딸과 막내딸이 자신을 부양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자 막내딸의 뺨을 때리고 허리춤에 숨겨 둔 흉기로 싸움을 말리는 막냇사위의 목과 옆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다행히 막냇사위는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과 함께 미국에 살던 노인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부양 문제를 두고 딸들 간에 평소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특히 노인이 막내딸 집에 머무는 동안 딸이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고 생각해 막내딸과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해코지를 당할까 봐 방어 차원에서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라고 경찰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은 현장에 있던 가족 중 한 명의 신고로 현행범으로 체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용되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내가
목포해양경찰서 외사계 형사 M이 그 첩보를 처음 들은 건 2021년이었다. 첩보의 주요 내용은 “캔디”. 달콤한 이름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불법체류 중인 베트남 노동자들 사이에서 마약 ‘엑스터시’가 돌고 있었고 캔디는 엑스터시를 일컫는 은어였다. 형사 M은 첩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형사 M은 먼저 마약공급책을 노렸다. 목포를 포함해 전남 서부 지역 일대에 마약을 퍼뜨리는 인물이었다. 형사 M은 어렵게 목포 구시가지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A 씨(남성, 20대 중반)의 SNS를 알아내고 그의 얼굴을 특정했다. 하지만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인 만큼 거주지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형사 M과 동료 형사들은 현장 잠복을 시작했다. 형사들은 목포 구시가지 골목에 몸을 숨기고 A 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며칠, 드디어 A 씨를 발견했다. 형사들은 눈에 띄지 않게 그의 뒤를 밟았고 A 씨의 거주지로 보이는 곳도 확인했다. 형사 M은 A 씨의 체포영장을 갖고 있었지만 디데이를 기다렸다. A 씨가 마약을 거래하는 현장에서 체포해야 구속을 확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떤 형사 M에게 뜻밖의 제보가 들어왔다.
오전 7시,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지원을 요청한다는 무전을 받았다. 아침부터 미지정 사동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몇 년 전 내가 미지정 사동을 담당할 때 데리고 있던 30대 후반의 J였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수용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던 J가 싸움을,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수용자 C와 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있었고 C가 J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한마디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말에 J가 C의 멱살을 잡고 말았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J답지는 않은 행동이었다. J가 아버지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그가 보육원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C가 며칠 전에도 J에게 “너 보육원 출신이냐?”고 물어봐 기분이 나쁘던 차에 애비 없는 자식 소리까지 나오자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J의 이름을 부르며 “너 답지 않게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보자 눈물을 왈칵 쏟는다. J가 사과를 하고 싶다 하고 C 역시 자식뻘 되는 놈 처벌받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는 팀장의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을 화해시켰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J에
변호사 경력이 길지 않았던 때 담당했던 사건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조선족 아내 부부가 함께 구속되었다. 혐의는 보이스피싱. 두 사람을 처음 접견하던 날, 남편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변호사님, 보이스피싱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저희는 그냥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을 뿐이에요.” 아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오열을 할 뿐이었다. 아내가 환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환전소에서 사용하던 통장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되었고, 입금된 돈을 중국의 다른 통장으로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보낸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된 것으로 보였다. 겉보기에 부부의 사연은 영락없는 보이스피싱 범행이었다. 보이스피싱 범행의 특성은 점조직이라는 점에 있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 피해자를 속이는 사람,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사람, 그리고 피해금을 인출하거나 송금하는 사람까지 모두 각기 따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특히 인출책이나 송금책의 경우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본인이 정확히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형사 소송에서 범행의 고의는 엄격하게 인정하는 것이 원
2019년 12월 26일 밤 11시, 충남 계룡시 한적한 도로. 군인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건물이 거의 없고 인기척조차 드문 길가를 비틀거리며 걷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인근 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이 마침 남자를 발견했다. 곧 쓰러질 듯 비틀대던 남자는 40대 정도로 보였고 머리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남자는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말했다. 중고거래로 귀금속을 팔기 위해 구매자인 젊은 남성을 만났다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어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애원했다. 군인은 서둘러 112에 신고했고 곧 경찰과 119 구조대가 현장으로 출동했다. 남자는 흐릿한 의식을 부여잡으며 경찰에게 자신이 당한 사건을 설명했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27일 논산경찰서와 충남청 광역수사대의 합동수사본부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목격자와 피해자의 증언에 따라 어젯밤의 사건을 강도사건으로 판단했다. 충남청 광역수사대의 L 형사는 팀원들과 함께 사건 현장 주변의 CCTV를 샅샅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근 시설관리소 CCTV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12월 26일 밤 10시, 흰색 차
사실 법, 특히 형법에서는 ‘진심’이 중요하지 않 다. 하지만 ‘고의’는 중요하다. 두 개념은 어떻게 다를까? 변호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의뢰인들이 “왜 재판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 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느냐 는 것이다. 사기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하는 핵 심은 “기망 행위를 했는가”이다. 많은 의뢰인 들은 “피해를 줄 의도는 없었다”, “나도 사업이 성공할 줄 알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의뢰인들의 진심을 믿는다. 하지만 법원 은 ‘진심’이 아닌 ‘고의’를 본다. 중요한 것은 그가 피해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행동했느냐이 다. 그런데 고의란 무엇일까. 상대방에게 한 말 이 실제와 다를 수도 있고, 계획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법은 내심으로 이를 인식하 고 용인했다면 사기죄 의 유죄를 선고한다. 변호사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보면, 사 업을 하는 사람 중 실패를 목표로 시작하는 사 람은 없다. 투자자들, 즉 나중에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도 100% 성공을 확신하고 돈을 맡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정말 투 자자들에게 100% 성공할 것이라 믿게 했던 것 일까? 이 지점에서 의심스러울
대전교도소에서 야간 2팀 부당직 업무를 볼 때였다. 부당직은 새벽 2시에 당직을 교대해 아침 6시까지 소 전체를 책임지는 일을 한 다. 그날 새벽 5시쯤이었다. 60여 명이 3,200 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취사장에서 약간 의 소란이 일어난 듯했다. 가석방 특혜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할 정도로 한여름의 취 사장 출역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간간이 출역을 거부하는 수용자들도 있다. 그날은 수용자 A와 반장 사이에 일이 있는 듯했다. A가 작업거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반장은 다툼이 있긴 했지만 계속 출역을 거 부하고 혼자 조사실에 간다니 A를 조사수용 시키라며 남 일 이야기하듯 말했다. 나는 다 툼을 한 사람을 같이 보내야 하니 데리고 오 라고 했다. 그제야 반장은 머뭇거리며 두 사 람을 화해시키겠다고 했다. 수용자를 조사수용 시키는 일은 교도관 입장에서 시간 낭비도 줄이고 일을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나는 그 방 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힘든 출 역을 한다는 건 가석방 출소를 기대한다는 것 일 텐데, 이번 일로 징벌을 받으면 그 혜 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떻게든 A가 마음을 잡고 취사장 일에 적응하기를 바랐다. 그로
경남 통영 해안가에 자리 잡은 기호마을에서 부부는 굴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2017년 7월 5일 아침, 그날 부부는 2층 휴게실에 올라 아침 햇살이 반사되는 잔잔한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조용한 바다였다. 그런데 그때, 부부는 동시에 수면 위를 떠다니는 기묘한 물체를 목격했다. 멀리 떠 있는 그것의 형체는 언뜻 보니 옷을 입은 마네킹인 것 같기도 했다. 해안가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발견하는 일은 이 마을에서 흔한 일이었기에 부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다시 1층의 일터로 돌아갔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어 휴게실로 올라온 순간, 부부는 다시 바닷가를 향해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발견했던 그 마네킹이 파도에 쓸려 해안가 가까이로 와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숨이 멎을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부부가 마네킹으로 생각했던 물체는 바로, 여성의 사체였다. 신고를 접수한 통영해양경찰서 수사5팀은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젊은 형사 3인으로 구성된 수사팀이었다. 육지로 인양된 사체에는 훼손된 흔적이나 부패의 흔적은 거의 없었다. 단정한 옷차림도 그대로였다. 시신이 바다에 오랜 시간 떠다녔다면 부패가 진행되기 마련인데 시신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