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10화) 진주 덕진 경찰서 강력 3팀이 해결한 고준희 양 사건 (1)

실종 한 달 뒤 신고한 부모…
동거녀 母에게 아이 맡긴 친부
의심은 되지만 증거는 없어
압수된 휴대폰 3대의 비밀은

 

 

2017년,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 강력3팀의 P 팀장과 L 형사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을 만났다. 다섯 살 어린이가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경찰대학 출신의 젊은 P 팀장과 베테랑 형사였던 L 형사는 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아이의 이름은 고준희, 사건의 시작은 고준희 양의 아버지 A 씨(남성, 30대 중반)와 그의 동거녀 B 씨(여성, 30대 중반)의 실종 신고였다.


2017년 12월 8일 오후 1시, 전북 전주 아중지구대를 두 남녀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제발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A 씨와 동거녀 B 씨였다. 5세였던 딸 고준희 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실종된 시점이 한 달이나 지나있을 때였다.

 

사건을 접수한 전주 덕진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실종된 고준희 양이 살던 곳부터 확인했다. 고 양은 친부의 동거녀였던 B 씨의 어머니 C 씨(여성, 60대 초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수사팀은 고준희 양이 살던 빌라 주변 CCTV부터 순차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날 덕진경찰서 강력3팀 P 팀장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종일 올리는 수사팀의 메시지로 마음 편히 쉴 수는 없었다. P 팀장 역시 젊은 경찰 부부였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되어 가슴이 아팠다.


P 팀장은 다음 날 출근해 관련 회의에 참여하자마자 이 사건이 너무나 미심쩍다고 여겨졌다. P 팀장이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고준희 양의 친부였다. 친부라는 사람이 딸을 잃어버린 지 한 달이나 지나서 신고했다는 사실은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친부인 A 씨가 한 달 동안 딸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이상한 정황이었다. P 팀장이 의심을 거듭하고 있을 때 덕진경찰서 강력3팀의 베테랑인 L 형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사건, 강력사건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덕진경찰서는 투 트랙으로 사건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실종사건을 전제로 사건을 추적하기로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팀이 이 사건을 강력사건으로 재편해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했다.


덕진경찰서 강력팀에서는 고준희 양의 가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특히 고준희 양의 아버지 A 씨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다. 고준희 양의 친부 A 씨와 동거녀 B 씨, 동거녀의 어머니 C 씨는 뒤늦은 실종 신고 이유에 대해 똑같은 진술만을 반복했다.


A 씨와 B 씨는 2016년 6월부터 함께 살았다. A 씨가 전처와 헤어지면서 B 씨와 B 씨의 아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2017년 1월 A 씨의 전처가 양육비 문제로 A 씨와 싸웠고, A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이를 A 씨의 회사 경비실에 맡기고 떠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A 씨는 두 아들은 전처에게 돌려보내고, 막내인 고준희 양만 자신이 키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고준희 양과 동거녀 B 씨의 아들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면서 결국 2017년 4월부터는 B 씨의 어머니인 C 씨가 고준희 양의 양육을 맡게 되었다.


고준희 양이 실종된 11월 18일은 A 씨와 B 씨가 크게 다툰 날이었다. 두 사람은 관계를 그만 끝내기로 했다. 이에 B 씨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어머니인 C 씨가 몰고 온 차를 타고 떠났다. 그러면서 친부인 A 씨에게 고준희 양을 C 씨의 집에서 데리고 나가라고 말했다.

 

이후 B 씨와 C 씨가 C 씨의 주거지에 도착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두 사람은 A 씨가 고준희 양을 데리고 갔다고 생각했다. 헤어진 A 씨와 B 씨가 다시 연락을 했던 시점은 한 달 정도 지난 12월 8일이었다.

 

두 사람이 이삿짐 문제로 다시 만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A 씨는 고준희 양을 다시 데리고 오라고 했고, 이에 B 씨가 놀라면서 한 달 전 아이를 데려간 게 아니냐고 물었다는 것이었다. 이 현장이 A 씨, B 씨, C 씨가 한 달여 만에 아이의 실종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세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11월 18일 우연찮게도 C 씨의 집에 혼자 있던 고준희 양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진 사건이었다.


전주 덕진경찰서 여청 실종수사팀은 고준희 양이 자발적으로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11월 18일 C 씨 집 주변 CCTV를 모두 조사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고준희 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사팀은 이 실종사건을 점점 더 심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12월 9일, 덕진경찰서 강력팀은 이 사건이 강력 범죄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납치나 강도 사건과 연관되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강력팀은 CCTV를 샅샅이 뒤지고 탐문 수사를 통해 고준희 양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실종 당일 고준희 양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 외 고준희 양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고준희 양을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2017년 3월 31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고준희 양은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인 4월경부터 B 씨의 모친 C 씨와 함께 지냈던 것이다.


한편, 강력3팀의 L 형사는 참고인으로 A 씨를 조사하면서 점점 의심이 쌓여갔다.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슬픔으로 A 씨는 절절하게 울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범죄자를 조사하며 심리를 꿰뚫어 온 L 형사 눈에는 그의 울음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극 중의 한 슬픈 배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려 애쓰는 배우의 연기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한번은 L 형사가 세 번째 참고인 조사 요청을 위해 A 씨에게 연락을 했는데, A 씨가 C 씨의 집 뒷산에서 혼자 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들이 아무래도 건물 앞쪽만 수색하는 것 같아서 자신이 직접 산속을 수색해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L 형사의 눈에는 그 진실성이 의심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A 씨가 사망한 아이를 산 어딘가에 묻은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의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수사에 진척이 없자 강력3팀은 참고인들을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단, C 씨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조사에서 빠졌다. 수사팀은 고준희 양의 친부 A 씨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11월 18일 C 씨의 집에 가서 준희를 데려갔습니까?” A 씨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거짓말탐지기의 반응은 <진실>이었다. 한편 B 씨에게는 “11월 18일 어머니의 집에서 준희를 보았습니까?”라고 물었다. B 씨는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지만 탐지기 반응은 <거짓>이었다. 이에 B 씨는 자신이 너무 긴장한 탓에 거짓 반응이 나왔다면 C 씨의 집에 가보니 고준희 양이 사라지고 없었음을 주장했다. 수사팀은 점점 고준희 양의 가족에게 혐의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혐의를 확정 지을 결정적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사팀이 선택한 다음 단계는 공개수사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12월 15일 고준희 양 실종사건을 공개수사하기로 했다. 전단지가 제작되었고 고준희 양의 얼굴이 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키 110cm에 20kg의 작은 아이었다. 쌍꺼풀 없는 눈은 사시였고, 두 개의 앞니가 빠져 있었다.

 

전단지 속 아이는 두 입술을 꾹 다문 채 힘없이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전단에는 없던 정보들이 언론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고준희 양이 약간의 발달장애나 자폐증 증세가 있었으며, 갑상선 기능장애로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준희 양의 외할아버지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손녀딸에게 자폐증이 없었다며 보도 내용에 반박하기도 했다.

 

수사팀은 제보와는 별개로 고준희 양의 가족을 계속해서 주의 깊게 조사했다. 특히, 11월 18일 이후의 C 씨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철저하게 추적을 시작했다. 수사팀이 C 씨 명의의 차적 조회를 실시해 보니 C 씨가 11월 18일 이후인 11월 27일에 남원을 그리고 12월 7일에는 하동으로 간 것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이 움직임이 고준희 양 실종 사건과 관계있는 동선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C 씨는 친척을 만나러 갔다고 진술했으며 탐문 결과 진술은 사실이었다.


수사팀은 참고인 신분으로 이들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선 고준희 양을 홀로 집안에 방치한 C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C 씨의 입건으로 압수수색도 가능해졌다. 수사팀은 C 씨가 입건된 뒤에 C 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고준희 양의 것으로 보이는 칫솔, 컵 등을 수거하고 장롱 위쪽에서 휴대폰 한 점도 찾아냈다. C 씨가 최근까지 사용했던 휴대폰이었다. 한편 수사팀은 같은 날 전북 완주군의 A 씨 집도 압수수색하고 그곳에서도 버려진 휴대폰 2점을 수거했다. 휴대폰에 대한 조사 결과, 놀랍게도 A 씨, B 씨, C 씨 세 사람이 모두 12월 6일에 휴대폰을 교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고준희 양 실종 신고가 접수되기 이틀 전의 일이었고, 사건의 시간적 배열에서 모종의 불길한 긴장감이 돌고 있음이 형사들의 촉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이들 세 사람은 그저 약정 일자가 만료되어 좋은 가격에 휴대폰을 함께 교체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이 범죄자로 몰리는 것 같은 분위기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수사팀은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점점 더 깊은 의문에 빠져들었다. 과연 고준희 양이 11월 17일에 실종된 것이 맞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그 이전에 고준희 양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고준희 양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17년 3월 31일이었다. 수사팀은 그 시점부터 실종 신고 전까지 언제든 고준희 양이 실종될 수 있다는 전제로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주 덕진경찰서 강력3팀이 해결한 고준희 양 사건(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