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9년 구속 수감되어 현재 26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입니다. 오랜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며, 수차례 이송을 거듭하다 보니 더 시사법률 신문 기사에서 보았던 사건속 인물들과도 자연스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가장 큰 아픔은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저를 잊고, 결국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이곳에 수감된 죄인이기에, 사회가 우리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론마저도 우리를 단순한 범죄자로만 다루고, 교도소에서의 삶이나 출소 후의 현실에 대해선 단 한 줄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더 시사법률 신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가뭄 끝 단비처럼 반갑고, 차곡차곡 쌓여만 가던 울분과 서러움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다른 언론과는 달리, 수형자들의 심정과 고충을 이해하려는 기사들을 보며,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이 위로와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기자님들께서는 ‘뭐 이렇게까지야’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성실하게 수용 생활을 이어가며 희망을 놓지 않는 수용자들에게는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법률 지식 하나 없이 긴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복병을 마주했습니다. 법을 몰랐기에 자기방어조차 할 수 없었고, 그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0년 이전까지는 무기수들이 20년 전후로 가석방되었지만, 이후에는 30년 전후로 변경되었고, 지금은 기준조차 모호한 상황입니다.
귀휴를 나갔다 생을 마감한 사건 이후 무기수들에게 허용되었던 귀휴(외출) 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무기수들은 지난날을 깊이 후회하고 반성하며, 다시 그 시간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끝없는 불확실한 희망 속에서 “23년이면 가능할까? 25년이면? 30년 안에는 나갈 수 있을까?” 끝없는 희망 속에 살아가지만, 점점 몸은 늙어가고 있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다면 오히려 희망을 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기수들은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약 없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차라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었다면, 애초에 헛된 기대조차 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약 없는 희망을 안고 지난날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이 희망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끝을 알 수 없기에 더 깊은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밖에서는 오직 홀어머니 한 분이 유일한 가족이자 삶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건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결국 그 이유를 잃어버릴까봐 두렵습니다. 가족도, 의지할 곳도 없이 사회로 나가는 날이 오면,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회는 재범 방지를 말하지만, 우리는 정말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기약 없는 희망보다,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라면 차라리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무기수도 언제까지 복역해야 하는지 기준 이라도 주는 것 조차 어려울까요. 50년이든, 100년이든.
더 시사법률 신문이 우리를 범죄자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봐 준 것처럼, 사회도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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