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가 명확히 보이는데도, 보험금부터 지급하라니 답답할 뿐입니다.”
국내 한 보험사 SIU(보험사기특별조사팀) 팀장의 하소연이다. 고의사고와 허위 청구가 의심되는 사건을 눈앞에 두고도, 정작 수사에 착수하기는 어려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고객 정보를 확보하기 어렵고, 수사기관의 협조도 미흡한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보험사기와의 싸움은 수년째 제자리 걸음인 상황이다. 아시아경제가 지난 4월 SIU 책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40%는 보험사기 적발 건수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답했다.
반면 지난해 시행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의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70%에 달했다. 법은 강화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보험사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한 증거 확보의 제약이다.
조사에 응한 SIU의 49.2%가 이를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이어 수사기관과의 공조 지연(29.5%), 제한된 조사 권한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SIU 팀장들은 “수사기관의 협조가 원활하다”는 응답이 한 명도 없으며, 절반 이상이 수사기관과의 협업을 ‘비효율적’ 또는 ‘보통’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기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브로커가 연루된 범죄조직화가 두드러지고,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허위 진료, 허위 도수치료 청구 같은 신종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미용시술을 도수치료로 위장해 64억 원을 편취한 병원장이 유죄를 선고받았고, 74세 치매 의사를 이용한 9억 6천만 원 허위 진료 사건도 적발됐다. 그럼에도 보험사기 범죄의 실형 선고 비율은 22.5%에 불과했다. 일반 사기범죄의 징역형 비율(60.8%)에 비해 현저히 낮다.
현장에서 실무자들은 보험사기 대응을 위한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SIU의 한 부장은 “특사경은 식품위생법, 쓰레기 단속에도 사용되는데, 보험사기에도 적용하면 신속하고 전문적인 조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형사 출신 인력을 대상으로 자격증을 신설하고, 조사 권한과 자료 열람권을 부여하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험사기 대응에 AI 기술 도입이 거론되지만,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설문조사에서 SIU 관계자들은 “AI는 보조적 역할에 그칠 뿐”이라며, 제도적 뒷받침 없이 기술만 도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분석한 결과를 법적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증거법 등 제도적 정비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사기 대응에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사기관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SIU 실무자들은 “사건 피해액이 적다고 서랍에 묻히는 현실이 문제”라며 “특별단속 기간 외에도 일상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험업계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통해 제보 활성화도 노리고 있다.
보험사기 유인·광고를 신고할 경우 확인되면 최대 20억 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 제정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제도적 뒷받침과 수사기관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제이케이 김수엽 대표 변호사는 “보험사기의 범죄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는 반면 이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느리고 제한적”이라며 “특히 징역형 선고 비율이 낮아 ‘적발돼도 실형 가능성은 낮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범죄 유인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험사기 대응은 단순한 적발을 넘어 강력한 처벌과 예방 시스템 강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히 보험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