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하] 거짓말탐지기 응해야 할까? 진술분석제도를 활용하라

피해자·피의자 진술만 존재하는 사건
거짓말탐지기는 한계와 위험성 있어
과학적으로 진술 분석하는 제도 있어
진술분석제도 전략적으로 써야 유리

피해자와 피의자의 상반된 진술만이 있는 경우,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대법원 판례가 말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의 진술이 유죄의 유일한 증거라 하더라도 그 진술이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때 가장 중요한 쟁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다.

 

이 과정에서 흔히 활용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심리생리검사, 즉 ‘거짓말탐지기’다. 진술의 진실 여부를 과학적 방법으로 가려보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지만, 법적으로는 여러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수사기관이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특히 피의자가 “나는 억울하다.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상황에서 수사관은 “그렇다면 거짓말탐지기를 해보라”는 식으로 권유를 하곤 한다.

 

문제는 거짓 반응이 한번 나오면 이후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진술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피의자가 아무리 일관되게 억울함을 주장하고 사실대로 진술한다 해도, 이미 ‘신빙성을 잃었다’는 낙인이 찍히면 그 인식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거짓말탐지기는 결코 가볍게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절차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 결과가 피의자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며, 설령 참여하더라도 그 한계를 분명히 이해한 상태에서 결정해야 한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심박수, 호흡, 발한 반응 등 생리적 변화를 측정해 거짓 여부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몸이 보여주는 반응’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럴 때는 단순히 기계적 수치에 의존하는 거짓말탐지기 대신,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한 진술분석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실제 사건에서 거짓말탐지기를 거부하고 대검찰청의 진술분석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무혐의 처분을 받아낸 경험이 있다. 사건은 상담소를 방문한 8세 여아가 상담소 운영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아동이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여느 성범죄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진술이 핵심 증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부터 “억울하다.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피의자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오히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필자는 경험상 그 선택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피의자는 필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거짓말탐지기에 응하지 않고, 대신 진술분석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 결과 피해 아동의 진술에서 여러 불합리한 요소와 비일관성이 드러났고, 분석관은 “진술의 신빙성이 낮고 허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피의자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진술분석은 단순히 진술의 표면적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진술과 허위로 꾸며낸 진술 사이에 나타나는 질적 차이에 주목하는 제도다. 예컨대 실제 경험에 기반한 진술은 세세한 묘사와 구체성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으며,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일관되게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꾸며낸 진술은 불필요하게 과장되거나, 구체성이 떨어지고, 반복되는 과정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진술분석은 대검 예규 제1225호 「진술분석 규정」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다. 이 규정은 2014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음에도 아직 활용 빈도가 높지 않다. 이 제도는 원칙적으로 성폭력 사건에서 13세 미만 아동, 지적 장애 피해자, 아동학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분석 대상자로부터 자발적인 진술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라면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다른 사건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억울함을 강하게 호소하는 피의자라면 무턱대고 거짓말탐지기를 선택하기보다, 이 제도를 전략적으로 고려해 보는 것이 현명하다. 진술분석은 대검 예규라는 명확한 근거에 따라 실시되며, 진술의 내용·질·일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훨씬 설득력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