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SK그룹 최태원(65) 회장과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오는 16일 내려진다.
2017년 7월 최 회장이 협의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 만이자, 지난해 5월 항소심 선고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재산분할 규모, 특히 2심이 인정한 1조3808억 원이 유지될지 여부다.
1심과 2심, 20배 벌어진 재산분할…쟁점은 ‘특유재산’ 인정 여부
재판부 판단은 1·2심에서 극명하게 엇갈렸다. 2022년 12월 1심은 최 회장의 SK㈜ 지분이 선대 회장 고(故)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이라며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금 665억 원만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양측 합계 재산을 약 4조 원으로 산정하고, 그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위자료 역시 20억 원으로 증액됐다. 재판부는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으며, 이는 최 회장의 특유재산 가치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특유재산의 가치 증가에 대한 간접적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핵심 쟁점으로 다룰것으로 전망된다.
‘300억 비자금’의 성격…재산분할 기여로 볼 수 있나
상고심에서 또 하나의 핵심 쟁점은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의 법적 성격이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 측이 제출한 어음 봉투와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근거로 이 자금이 최종현 회장 측으로 흘러들어갔고,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봤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실제 수령 사실이 없으며, 퇴임 후 지급 약속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설령 자금이 유입됐다 하더라도 불법 비자금이라면 기여로 인정하기보다 국고 환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노 관장 측은 “불법 자금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설령 자금이 유입됐다 하더라도 불법 비자금이라면 기여로 인정하기보다 국고 환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재산분할 시 기여도를 평가할 때 자금의 합법성까지 고려해야 하는지, 아니면 경제적 효과만으로 판단할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법리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판결 경정’이 미치는 영향…기여도 산정의 타당성 논란
2심 판결문 수정 문제도 상고심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 직후 대한텔레콤(현 SK) 주식 가액을 주당 100원에서 1000원으로 수정했다. 이로 인해 최종현 회장의 기여도는 12.5배에서 125배로 급등했고, 최 회장의 기여도는 355배에서 35.5배로 급감했다.
최 회장 측은 이러한 수치 변경이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법리 오해 및 사실인정 오류를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수정이 재산분할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를 반영하지 않은 2심 판단이 정당한지 여부를 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재산분할 외에도 위자료 액수의 적정성도 쟁점이다. 1심은 위자료를 1억 원으로 인정했지만, 2심은 이를 20억 원으로 증액했다. 대법원은 사실심 법원의 재량을 존중하되, 사회 통념상 현저히 부당하거나 판례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 재심리를 통해 금액 조정을 할 수 있다.
소부 선고 의미…파기환송 가능성도
이번 사건은 당초 전원합의체 회부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가 소부에서 선고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는 기존 법리를 변경할 필요 없이도 사건 해결이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다만 소부 심리라고 해서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비자금 유입 사실 인정의 증거 판단, 기여도 산정 과정의 오류, 판결 경정의 영향 등을 문제 삼는다면 사건은 파기환송돼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반면 2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최 회장은 1조3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보유 주식의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단은 단순한 이혼 소송을 넘어 ‘특유재산의 경계’와 ‘간접 기여의 범위’, 그리고 불법 자금의 기여 인정 여부까지 다루는 복합적 사건”이라며 “대법원의 판단이 향후 고액 재산분할 사건에서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배 변호사는 “배우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정치적·사회적 지원, 자금 조달 등 비경제적·간접적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며 “이는 재벌가뿐만 아니라 고액 자산가 부부의 이혼 소송에서 분할 비율 산정에 중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300억 비자금’이 실제 유입됐는지, 불법성이 인정된다면 이를 기여도로 볼 수 있는지도 매우 민감한 쟁점”이라며 “대법원이 경제적 효과만을 볼지, 자금의 합법성까지 판단 요소로 삼을지에 따라 판결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