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조사 중 280㎞ 전보…법원 전보 정당성 기준은?

法 “조사 단계서 원격지 전보는 부당 조치”
업무상 필요성과 생활상 불이익 고려해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된 근로자를 거주지에서 280km 떨어진 원격지로 전보한 조치는 부당한 전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김준영 부장판사)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 전보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원격지 전보가 부당하다는 중노위 재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앞서 공사는 2023년 12월 경기 파주지사에서 근무하던 A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자 감사실 요청에 따라 A씨와 신고인을 분리한다는 이유로 A씨를 나주 지역 지사로 전보했다.

 

이에 A씨는 전보 발령이 부당하다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고, 지노위와 중노위가 모두 부당 전보라고 판단하자 공사가 재심판정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인들과의 분리 조치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전남 나주시로 원격지 전보할 필요성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격지 전보를 하기 위해서는 추가 필요성이 있어야 하는데 A씨가 전보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공사 단체협약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확정된 경우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른 권역’이 아니라 ‘다른 지사’에 배치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조사 단계에서까지 다른 권역으로 보낼 불가피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전보로 인한 생활상 불이익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기존에 화성 자택에서 약 80㎞ 떨어진 파주지사로 출퇴근했지만, 이 사건 전보로 약 280㎞ 떨어진 나주로 전보 받아 출퇴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전보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은 근로기준법 제23조와 제76조에 근거한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또 근로기준법 제76조의 3 제2항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용자의 조사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어 같은조 제3항과 제5항에서는 조사의 진행 상황에 따라서 조치를 취해야할 대상을 구분한다. 조사 중에는 피해자 보호 중심, 사실 확정 후에는 가해자 제재 중심으로 조치의 성격을 구분하고 있다.

 

제3항은 “직장 내 괴롭힘을 입었다는 피해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근로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가해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조사 단계에서는 피해자 보호를 중심에 두고 조치를 해야한다는 취지다.

 

또한 제5항은 “제2항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면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한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해야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가해 여부가 확정될 경우 사용자는 가해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전보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

 

다만 법조계는 “조사 기간 중 피신고인에 대한 전보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고 해서 전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중 전보가 가능은 하나 업무상 필요성과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서울고등법원은 2023년 중국 법인에서 근무하던 근로자에게 징계를 전제로 국내 본사로 전보하라는 인사 조치가 부당 전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보로 인한 참가인의 생활상 불이익이 너무 크다”며 “이 사건 인사발령은 부당 전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전보의 정당성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2019년 서울고법은 서울 강남 본사에서 강원영업소(여주)로의 전보는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출퇴근 거리가 39.1km에서 56.5km로 늘어났지만 교통비와 차량운행 보조비, 주거지 지원 등으로 경제적 불이익이 상당 부분 감소했다”며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법령에 조사 기간 중 피신고인 전보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며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사안에서 많은 회사들이 조사 중 전보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원격지 전보는 직원의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정되기 어렵다”며 “해당 직원은 아직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 분리조치를 넘어선 원격지 전보는 인사권자의 재량권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