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없이 확보한 대출서류, 항소심서 증거능력 배제… 무죄 왜?

 

허위 계약서를 제출하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수십억 원의 불법 대출을 받아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당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이 영장 없이 확보한 대출 관련 서류가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유죄의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박은영)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B씨 역시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18년 2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충북 영동의 한 농협에서 위조한 매매계약서나 타인의 명의로 작성된 계약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총 83억4500만 원을 대출받은 혐의를 받았다.

 

구입하려는 토지의 공시지가가 실제 거래가보다 높게 형성된 점을 이용해 매매대금을 부풀리거나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는 방식이었다. 조사 결과 A씨는 정상 대출 한도인 29억5000만 원을 54억 원 넘게 초과하는 금액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심은 위조된 계약서와 대출서류 등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해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1심 유죄의 근거가 된 대출서류 등은 영장주의와 적법 절차를 위반해 수집된 증거”라며 “위법하게 수집된 대출서류뿐 아니라 이를 기초로 수집된 2차 증거들 역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 없이 지역농협 측에 A씨의 매매계약서와 장부 제출을 요구해 해당 서류를 확보했다. 형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공판정 외의 압수·수색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영장주의 원칙, 제215조).

 

영장 없이 압수하려면 소유자나 보관자가 ‘자유로운 의사’로 제출해야 하는 임의제출(제218조)이어야 한다.

 

그러나 농협 직원은 “영장을 요구하며 제출을 거절했으나 수사관의 압박에 의해 건넨 것”이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근거로 임의제출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적법한 절차 없이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다. 재판부는 경찰이 영장주의와 적법절차를 위반해 확보한 대출서류는 증거능력이 없으며, 이러한 1차 증거를 토대로 확보한 2차 증거들 또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출서류, 관련 장부, 이를 기초로 한 진술 등 유죄의 핵심 근거가 모두 배척됐다.

 

검찰은 “농협은 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법인으로 공공기관에 해당하며 개인정보 제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지역농협은 본질적으로 공공기관보다는 사법인의 성격이 강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위조된 서류임을 알면서도 10차례에 걸쳐 대출을 승인한 지역농협 지점장 C씨에 대해서는 신용협동조합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유죄가 유지됐다. 다만 재판부는 “영업 실적을 올리려는 목적 외에 개인적 이득을 추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 원으로 감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