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일대에서 발생한 두 건의 여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사건 20년 만에 특정됐으나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두 사건의 피의자가 당시 건물 관리인이던 60대 남성 A씨(장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2015년 암으로 사망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2005년 6월 6일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휴일이라 돌아가던 20대 여성 B씨는 귀가 중 A씨에게 붙잡혔다. A씨는 B씨의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뒤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쌀포대와 비닐로 싸서 노끈으로 결박한 후 인근 노상주차장에 유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신은 다음 날 쓰레기 무단투기를 단속하던 공무원에게 발견됐으며,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로 확인됐다.
같은 해 11월 20일 친정에 간다며 외출했던 40대 여성 C 씨가 실종됐다.
경찰은 C씨가 같은 빌딩을 방문했다가 A씨에게 지하 1층 창고로 끌려간 뒤 폭행·성폭행을 당하고 나일론 끈으로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신은 비닐과 돗자리로 감싼 채 A씨 차량에 실려 주택가 노상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됐다. 두 피해자의 시신은 모두 쌀포대·비닐 포장과 노끈 결박 등 처리 방식이 동일해 동일범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두 사건 발생 이후 서울 양천경찰서는 전담수사팀을 꾸려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했다. 현장 증거물 감식과 유전자 감정, 전과자 대조 등을 진행했다. 시신에서 모래가 나온 점에 착안해 공사 현장 등을 탐문하고, 범행에 사용된 쌀포대와 비닐, 전선 등의 유통경로를 수사하기도 했다.
수사팀은 8년 동안 수사를 이어갔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결국 2013년 6월 미제사건으로 전환했다.
이후 2016년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이 기록을 넘겨받아 현장 증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두 차례 재감정 의뢰했다. 2020년 분석기법의 발전으로 두 사건의 증거물(속옷·노끈)에서 동일한 DNA가 검출되며 동일범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경찰은 현장을 수백 차례 탐문하고 동일 수법 전과자, 기타 통신 및 신정동 전·출입 기록 등을 분석해 총 23만 1897명의 수사 대상자를 특정했다. 이후 범행 수법과 시간, 직업, 거주 형태 등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피의자가 조선족일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인터폴 국제공조를 통해 DNA를 대조했다.
그러나 일치하는 DNA를 확인하지 못했고, 사망자 주변으로 수사 범위를 넓혀갔다. 경찰은 △신정동 거주 및 직장 경력 △피해자 주변인 △설비·인력·공사·봉제업 종사자 △독립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직업 △살인·성폭력 등 전과 3차례 이상 △주간·휴일 및 특정일 범행 △사망(자살) 원인 부자연스러운 대상자 등의 기준을 통해 이미 숨진 56명을 들여다봤다.
그 과정에서 양천경찰서 기록 보관실 3차 수색을 진행했고 재검색 과정에서 2006년 2월 강간치상 혐의로 체포된 A 씨 또한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A 씨가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당시 경찰이 1·2차 사건 발생 장소인 빌딩 관리인으로 근무한 사실을 파악했고 그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하지만 A 씨는 2015년 7월 암으로 사망한 뒤 화장 처리돼 유골 확보가 불가능했다.
이후 경찰은 A 씨가 생전 거주한 지역의 병·의원 및 검사기관 40곳을 탐문한 끝에 A씨의 검체가 보관된 시설을 찾아내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를 확보했다.
올해 8월 국과수 감정 결과 A 씨의 DNA가 두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경찰은 A 씨가 2006년 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함께 생활했던 재소자 10명 등을 탐문해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교도소 재소자들도 “A씨는 60대였지만 180cm의 다부진 체격이었고 노역 때 노끈 매듭을 매우 깔끔하게 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2차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006년 2월 동일 장소에서 유사 수법으로 성범죄 시도 후 검거된 사건의 피해자를 재조사해 범행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A 씨를 범인으로 특정했다.
경찰은 조만간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장기 미제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겠다”며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아울러 경찰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2006년 신정역 일대에서 발생한 이른바 ‘엽기토끼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A씨는 이미 교도소에 수감 중이어서 동일범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엽기토끼 사건'은 2006년 5월 임시공휴일, 한 여성이 신정역 일대 반지하 원룸으로 남성에게 끌려갔다가 도주한 사건이다. 해당 여성은 건물 내부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