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돈을 많이 받으면 무슨 사건이든 맡아 준다는 흔한 편견과 달리 실제 법률 시장에서는 의뢰인의 범죄 유형과 ‘진상 가능성’ 등을 면밀히 따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변호사들이 사건 선별에서부터 사후 관리까지 투명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회적 비난이 큰 사건은 국선 변호인 외에는 수임이 쉽지 않으며, 흉악·파렴치범 사건의 경우에도 수임료와 무관하게 사건을 맡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2016년과 2024년 각각 탄핵심판이 청구됐던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대형 로펌들이 사회적 논란을 우려해 수임을 기피하기도 했다. 승소 가능성이 낮은 사건을 수임해 패소할 경우 로펌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수임을 맡았다가 논란이 커질 경우 변호인이 사임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20년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변호인은 검찰 첫 조사 당일 사임계를 제출했다. 당시 변호인 측은 “가족 설명과 확인한 사실관계가 너무 달랐다”며 더 이상 변론을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의 파장과 유죄 가능성만큼이나 변호사들이 수임에서 중시하는 것은 ‘진상 의뢰인’ 여부다. 소송 대금 미지급이나 허위 주장을 강요할 우려가 높은 의뢰인은 수임 단계에서부터 걸러낸다.
한 변호사는 이날 본지에 “허위 진술을 강요하거나 잔금을 주지 않는 의뢰인은 아무리 돈을 제시해도 피한다”고 말했다. 조직폭력이나 마약, 사기 사건 등이 기피 대상이 되는 이유다. 반면 기업 소송은 보수가 안정적이고 업무 관리가 용이해 선호된다.
이처럼 현실에서 변호사 수임은 단순히 돈을 지불한다고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사안이 복잡하거나 의뢰인이 ‘진범 흠결’이 드러날 가능성이 큰 사건은 변호를 맡았다가 뒤탈이 크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계약 전 수차례 검토를 거친다. 변호사 윤리장전 16조는 “사회 일반의 비난을 이유로 수임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사회적 비난과 평판 관리라는 실리적 판단을 무시하지 않는다.
수임 후에도 변호사의 줄타기는 계속된다. 의뢰인이 진범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거나 의뢰인이 위증을 강요할 때 변호사는 진실 은폐 금지(변호사법 24조)와 비밀 누설 금지(법 26조) 사이에서 고민한다. 또다른 변호사는 본지에 “양심상 도저히 계속할 수 없다면 사임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돈 대 양심’의 고민을 피해 갈 수 없다.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에는 “변호사는 모두가 등을 돌릴 때 얼굴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변호사는 돈과 명예와 정의 사이에서 외줄을 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변호사가 사회적 정의 실현의 최전선에 선 존재라며 돈으로 정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돈을 받는다는 인식 전환이야말로 변호사 직업 윤리를 강화하는 첫걸음이라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JK 김수엽 대표변호사는 “변호사는 돈보다 정의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며 “사회가 불편부당한 변론 기회를 보장할 때 사법 정의가 온전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변호사들이 사건 선별에서부터 사후 관리까지 투명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수임 의뢰인에 대한 사전 조사 프로세스와 윤리적 판단 근거를 명문화해 사회적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