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기표한 투표지...‘재교부’ 받을 수 있을까?

 

잘못 기표한 투표지를 찢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이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제1형사부(이승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64)에게 벌금 300만 원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 5월 30일 오후 5시 20분쯤 강원 원주시 모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제21대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소에서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잘못 찍은 뒤 투표지를 다시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이미 기표한 투표지를 손으로 찢는 등 공직선거법상 투표지 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A씨가 잘못 기표한 투표지를 새로운 투표용지로 교환받지 못해 원하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되는 결과를 막기 위해 투표지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사정이 있더라도 해당 행위는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투표지 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직선거법 제244조 제1항은 투표용지·투표지 등을 은닉·손괴·훼손하거나 탈취한 사람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자기 투표지라 하더라도 고의로 훼손하면 중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공직선거법상 유권자는 일단 교부받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이후에는 잘못 찍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투표용지를 다시 교부받을 수 없다.

 

실제 2017년 수원지방법원에서 선거인 B씨는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기표를 마친 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자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선거사무원에게 처리 방법을 문의했지만 “그대로 투표함에 넣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안내를 들었다. 이에 B씨는 원치 않는 후보에게 투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지를 손으로 찢어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재판부는 “투표지 훼손 행위는 중하게 처벌되며, 벌금 100만 원 이상이 선고될 경우 선거권·피선거권 및 공무담임권 제한이라는 중대한 불이익이 따른다”고 밝히면서도, B씨가 선거를 방해할 의도가 없는 평범한 유권자라는 점을 고려해 선고를 유예했다.

 

법무법인 안팍 박민규 변호사는 “잘못 기표된 투표지를 무효로 만들기 위한 우발적 행위였고, 선거 과정 전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없었다면 이는 양형에서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직선거법 제244조는 선거의 공정을 해칠 수 있는 투표지 손괴·은닉·탈취 등을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형량 자체는 매우 무겁게 책정돼 있다”며 “특히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될 경우 형법 제41조 및 공직선거법 제18조 등에 따라 일정 기간 선거권·피선거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유권자 입장에서는 손괴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실무에서도 우발성, 반성 여부, 기존 전과 여부, 소란 행위 동반 여부 등이 양형에서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며 “실제로 여러 판례에서 고의적 선거방해가 아닌 경우에는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이 선고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