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판결문은 ‘종결문’이 아니다

판결문은 ‘결과표’가 아닌 ‘설명서’
판결문 속 허점을 읽어내는 방법
바꿀 수 있는 양형 조건을 찾아라
판결문 구조 속 항소 전략이 있다

 

당신은 법정에서 판결문을 받아 든 순간을 기억하는가? 재판장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주문이 낭독되는 동안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을 느낀다. “징역 ○년을 선고한다.” 그 한마디가 귓가에 울리고, 손에 쥔 판결문은 인생의 종결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30년 동안 형사사건을 다루며, 1심 판결문을 ‘끝’으로 받아들인 사람과 ‘시작’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판결문은 종결문이 아니다. 그것은 항소심으로 향하는 지도이다.

 

많은 이들이 1심 판결문을 받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판결문은 단순한 결과 통지서가 아니다. 그 안에는 법원이 어떤 근거로 유죄를 판단했는지, 어떤 정황을 불리하게 보았는지, 어떤 부분을 신뢰하지 않았는지가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판결문은 법원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항소는 바로 그 판단과정을 다시 검토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절차이다. 따라서 판결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어보는 것이 항소심의 출발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도13416 판결).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다는 것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그 기준을 충족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믿은 그 증거는 정말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증인의 진술은 일관되었는지, 물증은 명확한지, 정황증거만으로 판단된 것은 아닌지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판결문에는 법원이 채택한 증거와 배척한 증거가 구분되어 있다. 이 구조를 변호인이 세밀히 분석해야 항소심에서 반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범죄 사실 자체를 전면적으로 다투기 어렵다 하더라도, 형량을 줄일 수 있는 여지는 항상 존재한다.

 

법원은 양형의 이유를 통해 어떤 점을 유리하게 보았고, 어떤 점을 불리하게 평가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 이유를 면밀히 검토하면 항소심에서 다툴 수 있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은 단순히 감형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1심 법원의 판단 근거가 타당한지, 혹은 법령 적용이 과중하지 않았는지를 논리적으로 짚어내야 한다.

 

항소심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다. 법원은 감정이 아니라 논리를 본다. 항소심에서 결과를 바꾸려면 “1심 판결의 어느 부분이, 어떤 이유로 잘못되었는가”를 조목조목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판결문 특정 쪽에서 법원이 신빙성 있다고 본 증언이 다른 증거와 모순된다면, 그 모순을 근거로 논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 검토와 반박은 피고인 스스로 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이때 변호인의 전문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법리는 정밀한 도구와 같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판결문을 읽을 때는 네 가지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범죄 사실 부분에서는 법원이 인정한 사실과 피고인의 주장이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 살펴야 한다. 둘째, 증거의 요지에서는 법원이 어떤 증거를 믿었고, 그 증거들 사이에 모순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 법령의 적용 부분에서는 법원이 어떤 법조항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가중 요건이 정확히 충족되는지 따져야 한다. 넷째, 양형의 이유에서는 불리하게 참작된 부분이 정당한지, 형량이 과중하지 않은지 분석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항소의 방향이 구체화된다.

 

나는 30년간 수많은 항소심을 수행하며 억울한 유죄를 무죄로 바꾸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된 수많은 의뢰인들을 석방시켜왔다. 그 수많은 사건 속에서 느낀 것은 단 하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끝내 결과를 바꾼다는 사실이다. 항소심은 결코 운으로 뒤집히지 않는다.

 

기록 한 줄, 증거 한 조각, 진술 한 문장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사람만이 판결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의 곁에 서왔다. 재판이 길어져도, 결과가 쉽지 않아도, 한번 맡은 사건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마지막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변호사라면, 그 말에는 단 한 글자라도 ‘포기’라는 단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의뢰인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항소심은 언제나 두 번째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