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던 A는 어느 날 고객으로 네 명의 남자를 만났다. 평범한 고객으로 다가온 그들은 차량 리스와 구입을 진행하며 A와 친분을 쌓았다. 그들의 젠틀한 태도와 현금으로 두둑한 지갑, 확장되어 가는 사무실 규모는 A에게 그들이 성공한 사업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B는 가장 호감형의 인물로 A에게 종종 상품권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까지 하게 된다. 꽤 괜찮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B는 자신이 하는 상품권 거래는 합법적인 사업이며, 단지 통장을 빌려주는 것뿐이라며 A를 안심시켰다. 보이스 피싱을 의심하는 A에게 B는 단순한 편법일 뿐, 중국의 큰손들이 들어와 상품권을 대량으로 사는 거래라고 답했다. 그렇게 A는 B의 말만 믿고 상품권 거래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통장 관리와 수표인출 업무를 맡았다. B는 A에게 인출 할 수표의 권면액과 장수를 정확히 지시했고, A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A는 점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품권 거래를 의뢰하는 회사들의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은 정상적이었지만 그 거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A는 B가 대신해 상품권 거래를 해준다고 하여
보험사가 원인이 불명확한 전이암의 보험금을 앞서 발생한 암의 원발부위(최초 발생 부위)를 기준으로 지급한다는 분류 특별약관을 가입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 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8년 12월 갑상선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과 목 오른쪽 림프절 절제술을 받고 이듬해 갑상선암과 림프절 전이암 등을 최종 진단 받아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A 씨와 체결한 보험 계약에서 ‘보험 계약상 암에서 제외한 갑상선암으로 수술 시 보험가입금액의 20%를 지급한다’는 내용과 ‘불명확한, 이차성 및 상세불명 부위 암의 경우 일차성 암의 원발부위를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분류 특약을 근거로 보험금 440만 원을 지급했다. 이에 A 씨는 자신이 진단 받은 림프절 전이암은 갑상선암과 별개의 암이고,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사가 원발부위 분류 특약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보험금 2,200만 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보험계약자가 해당 분류 특약을 충
대낮 장터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 운전한 혐의로 기소된 50대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춘천지법 제2형사부(김성래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 씨(57)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고 6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2023년 2월 21일 오후 5시 4분쯤 강원 정선의 한 장터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306%의 만취 상태로 약 4분간 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출동 당시 A 씨 자택 주차장은 꽤 넓었지만, 그의 차량은 엉망으로 주차돼 있었다. 또 경찰관이 A 씨에게 ‘어디에서 술을 마셨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고, 다시 경찰관이 ‘집에서는 술을 더 안 드신 거예요? 집에 들어오셔서 바로 주무신 거예요?’라고 질문하자 ‘응’이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A 씨 측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주민의 차량을 출차하기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 주차를 엉망으로 했다”고 반박했다. 이후 주민이 차를 빼 달라고 전화하면 ‘술을 마셔서 빼줄 수 없다’고 변명하기 위해 주차 후 집에서 급하게 소주를 들이마셨다는 논리다. 1심 재판부는 “운전을 종료한 때로부터 약 50분가량 경과한 이후 측정된
누구나 어려웠던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시절, 우리집도 풍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한 지방 대학에 합격한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고, 아빠는 일을 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다녔다. 엄마가 보내주는 용돈은 아무리 아껴 써도 금방 바닥났다. 학교생활은 과 대표를 맡을 만큼 적극적이고 재밌게 했다. 하지만 지방대에 다닌다는 열등감이 나를 붙잡았다. ‘더 열심히 공부할 걸’ 하는 미련 속에서 1학기를 마치고 집에 올라왔다. 6월의 초여름, 느즈막한 시간에 한 친구가 날 찾아왔다. 나와 같이 미술학원을 다닌 친구는 좋은 대학에 진학한 후 그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입시 다시 해보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게. 같이 해보자!” “입시를 또 하라고? 그것도 반수를? 난 자신 없어.” 그렇게 돌아섰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아빠도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엄마, 아빠에게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는 너밖에 모르니?” “아직도 미술학원비가 80만 원이나
20여 년 전,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어떤 여자 둘이 말을 건네왔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어찌어찌 이야기가 오갔다. 내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던 한 여인이 물었다. “요즘 집에 안 좋은 일 있죠? 그거 본인만 해결할 수 있어요.” 건강했던 동생이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데다 엄마, 아빠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풍전등화일 때였다. 솔깃해진 나는 겁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날이 컴컴해진 지 오래여서 중간에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선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겼다. 나는 곧바로 도인처럼 보이는 남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희미하게 켜진 촛불 몇 개, 책상에 펼쳐진 한자 가득한 책, 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거라는 조상님들 얘기까지, 모든 것이 내가 잘못된 곳에 왔다는 걸 대변했다. 그제야 빠져나갈 궁리를 했지만 당장은 어려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미 제사상이 차려졌다고 말했다. 제사상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여하튼 조상님을 위한 것이며, 나는 가진 돈 전부를 내놓은 뒤 절을 올리면 된다고 했다
창문 밖으로 온 세상을 다 덮을 듯, 내리는 새하얀 눈을 보고 있으니,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로 나의 사랑하는 딸과, 아내. 눈 내리는 걸 좋아했던 아내.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는 딸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던 나. 지금쯤 길을 걸으며 당신은 딸의 손을 잡고 걷고 딸은 이곳저곳 자신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겠지. 보지 못해도, 보이지 않아도 당신과 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다시 보려면 수많은 날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딸 사진 뒷면에 편지를 쓰고, 당신과 딸을 생각하며 어렵게 잠을 청한다. ○○○교 아기 잠만보
2018년 12월 25일, 사람들은 연인, 가족, 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었다. 도심은 캐롤로 가득했고 거리마다 반짝이는 전구와 붉은 리본이 도시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평화로움도 잠시, 하늘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그건 하얀 눈이 아니라 연기였다. 김해시청 뒤편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진해졌고, 어느덧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깜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멈춘 곳은 시내에서 불과 500미터에서 떨어진 김해시 구산동 분성산이었다. 다행히 헬기 6대가 곧바로 출동해 불길을 잡았지만 갑자기 발생한 산불은 시가 2,200여만 원 상당의 소나무를 소훼시켰다. 분성산은 형사 K가 근무하는 김해중부경찰서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닷새 후, 분성산에서 또다시 불길이 올라왔다. 야간 산불은 낮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헬기와 소방차 출동이 어려웠고 두 번째 산불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 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지만, 형사 K는 같은 장소에서 닷새 간격으로 벌어진 산불에 방화를 의심했다. 형사 K는 팀원들과 시청 공무원과 함께 분성산 일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경북 청송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직원들이 차출을 나가는 데 필요한 생수 준비해 주세요. 내일 오후 5시에 찾으러 갈게요. 방화복 70벌 정도도 필요합니다.” 이런 전화가 울산 소재의 한 유통업체에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울산구치소 직원으로 자기를 소개했고, 산불을 핑계로 생수와 방화복 등을 주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매업체 명함도 함께 보내 유통업체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계좌번호로 2,500만 원 상당을 송금했으나, 이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피해업체가 울산구치소로 전화하며 이것이 교정시설 공무원을 사칭한 피싱범죄였고, 피싱범이 제시한 도매업체 역시 유령회사였음이 밝혀졌다. 구치소 직원을 사칭한 피싱 범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약국에 전화를 걸어 구치소 직원을 사칭하며 “구치소 내 필요한 약품을 준비해달라”, “심장 제세동기 30대가 추가로 필요하다”며 “가격이 비싸 원가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해주겠다. 이 업체를 통해 구입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약국 관계자는 소개받은 곳을 통해 3,000만 원 상당의 제세동기를 발주했다. 하지만 물건이 적재된 트럭 사진을 보내며 돈을 보내달라고 하는 업체와 약품 및 제
피해자 진술조서가 ‘특신상태’(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인신문 없이 증거로 채택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최근 특수절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 A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인 A 씨는 같은 국적의 유학생 B 씨가 1,000만 원을 빌리고 갚지 않자 2022년 8월 30일 B 씨의 집에서 여권과 통장을 들고 나오고 다음 날 공범과 함께 B 씨를 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됐다. 피해자 진술조서는 당사자가 법정에서 기재 내용이 맞다고 진술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 만약 소재 불명 등의 이유로 법정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돼야 한다. B 씨는 절도와 폭행 사실을 경찰서에 신고하고 그에 관한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이후 진술 내용과 관련해 1심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늦은 시간에 출석해 신문이 진행되지 못했다. B 씨는 다음 기일을 고지받았음에도 출석하지 않았고, 그
1945년, 전북 군산에 한 주류회사가 설립되었다. 회사의 이름은 ‘백화양조’. 이 업체는 청주, 인삼주 등을 생산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소주 공장을 신설하며 사세가 점점 커진 백화양조는 1970년대에 이르러 계열사도 여럿 거느리게 되는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때는 1978년 5월, ‘백화양조’가 한참 전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그날도 보통날과 다름없이 공장 직원이 출근했고, 양조장을 둘러보던 중 직원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술통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여고생의 사체였다. 군산 소재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B 양(당시 18세)이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백화양조는 물론 지역이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체가 발견되기 한 달 전인 1978년 4월 8일, 백화양조 계열사 사장의 아들이었던 A 군은 4시 30분쯤 오전 일찍 과외를 받으러 가는 B 양을 불러 세웠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던 B 양은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어 주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A 군은 군산 지역 재력가의 아들로 알려지며 또래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둘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갑내기로 서로 교제하던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