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가 조직화·국제화되면서 관련 형사 재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범죄 조직 실태가 알려진 이후 보이스피싱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재판의 쟁점도 이전과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금융 범죄 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는 “최근 보이스피싱 사건은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넘어 해외 거점을 기반으로 한 조직 범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범행 구조를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와 실제 가담 정도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곽 변호사는 특히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 회복 여부가 양형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지만 합의나 공탁만으로 형량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담 경위와 역할, 피해 규모, 범행 기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재판 흐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곽준호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Q.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계속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 사건 이후 관련 재판이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현재 보이스피싱 사건 재판은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까? A. 최근 몇 년 사이 보이스피싱 사건이
Q. 안녕하세요. 먼저 독자분들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시그널의 이홍열 변호사입니다. 사법시험을 통해 검사로 임관해 약 10년간 수사와 형사재판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재직 중에는 여러 검찰청에서 근무하며 일반 형사 사건을 비롯해 특수·공안·조세·외사 사건 등 다양한 유형의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현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형사 사건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형벌의 목적을 두고 응보와 예방 사이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형사정책은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시나요? A. 형벌의 목적을 응보와 예방 중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라는 응보의 원칙 위에, 재범 방지와 사회 보호라는 예방적 기능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만 현실의 형사정책은 범죄 유형에 따라 무게 중심이 다소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강력범죄나 사회적 파장이 큰 범죄의 경우에는 엄정한 처벌을 통해 책임을 묻는 응보적 요소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보이스피싱, 마약, 소년범죄처럼 재범 가능성과 사회 복귀 문제가 중요한 영역에서는 치료·교정·재활 프로그램 등 예방적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중학생 살인 사건으로, 화성연쇄살인사건 가운데 하나로 분류돼 왔다. 당시 경찰은 현장 체모 분석 결과 등을 근거로 소아마비 장애가 있던 청년 윤성여 씨를 범인으로 특정했고, 윤 씨는 1989년 체포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러나 2019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8차 사건 역시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하면서 사건은 전환점을 맞았다. 재수사와 재심 끝에 법원은 2020년 12월 윤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한 국가 책임을 공식 인정했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었다. 윤성여 씨는 이 사건으로 약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는 2009년이었고, 무죄는 그로부터 11년 뒤에야 확정됐다. 등대장학회 이사로서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삶을 살고 있는 윤성여 이사를 만나 당시 연행부터 수용 생활, 출소 이후의 적응, 그리고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질문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등대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는 윤성여 이사와 일문일답 Q. ‘화성 8차 사건’으로 수감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에 대해
강압 수사 속에서 만들어진 자백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지도 않은 범죄를 인정하는 순간, 선택지는 사라졌고 그 대가는 무기징역이라는 형벌이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21년 넘게 복역한 뒤 2021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장동익 등대장학회 이사장과 최인철 이사는 수사 초기의 자백이 폭력과 강요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는 압박 속에서 진술이 굳어졌고, 그 자백이 재판 전 과정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고 회상했다. 최 이사는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서 자연보호 감시원으로 활동하던 중 ‘3만 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다. 장 이사장은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있던 집 앞에서 이름이 불린 뒤 사하경찰서로 향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교도소 안의 현실도 녹록지 않았다. 의료 공백, 과밀수용, 장기수의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누적돼 있었다고 했다. 출소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의 문은 좁았고,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버텼다. “끝까지 살아 있어야 누명도 벗을 수 있다”는 말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Q.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형사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는 변호사 이동규입니다. 주로 구속 사건을 포함한 형사사건을 맡아 피고인과 가족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은 당사자에게 큰 부담이 되는 만큼, 절차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필요한 대응을 함께 정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교정 제도를 직접 가까이서 접한 경험이 형사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게 한 부분이 있었나요? A. 교정 현장은 형벌이 집행되는 공간이자, 한 개인의 삶이 크게 흔들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환경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형사사건은 단순히 유무죄 판단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수형자 개인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영향을 받는 구조라는 점, 그리고 처벌 이후의 삶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끼게 됐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형사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Q. 형사사법 제도 안에서 가장 보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A. 형사사법 제도에서 가장 보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절차의 실질적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수사 현장에서 ‘프로파일링’은 아직 낯선 개념이었다. ‘화성 연쇄살인 9차 사건’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였던 표창원 소장은 반복되는 미제와 참혹한 범죄 현장을 마주하며 기존 수사 기법의 한계를 절감했다. 이후 그는 영국 유학을 통해 범죄 심리와 프로파일링을 체계적으로 접했다. 연쇄살인 사건을 연구하며 표 소장은 자백과 목격 진술 중심으로 굳어진 한국 수사 관행의 구조적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잇따른 재심 무죄 사건과 범죄자들의 편지, 수사 현장의 현실을 지켜보며 그는 “사람은 변할 수 있지만 그 변화를 허용할 구조와 시간·자존감을 사회가 얼마나 감당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프로파일링 도입부터 재심과 재범, 변화의 조건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Q.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영국 유학은 어떤 계기로 결심하게 되셨나요? A. 유학을 결심할 당시에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9차 사건’ 당시 화성경찰서 기동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며 야산에서 증거물 수색을 하다가 14살 피해자의 시신을 직접 마주했습니다. 8차 사건까지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30년 넘게 교정 현장에서 수용자 곁을 지켜온 박종덕 교도관은 사범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교사 대신 교도관의 길을 택한 그는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무죄가 확정된 윤성여씨와 1993년 처음 만났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윤씨를 위해 신원보증을 서고, 가석방 이후에는 취업과 거처까지 도운 인물이다. 2019년 이춘재의 자백 이후 재심 과정에서는 법정에 직접 증인으로 나서 “무죄라고 믿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수용자에게서 온 편지 수백 통에 일일이 답장을 보내고, 출소자로부터 6년째 감사 문자를 받고 있다는 그는 “죄명보다 사람을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박 교도관에게서 윤씨와의 인연, 교정의 의미, 그리고 후배 교도관과 수용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Q.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 대신 교도관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맞습니다. 원래는 역사 교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교도관 시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아버지가 “학생만 가르치는 게 교육이 아니다. 교도소에서 사람을 바꾸는 것도 교육이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시험을 본 뒤 1993년 청주교도소에 발령을 받으면서 교정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Q. 오늘은 안팍의 안지성 변호사님을 모셨습니다. 변호사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안팍에서 형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안지성 변호사입니다. 마약, 보이스피싱, 강력범죄 등 중대 형사사건을 주로 다뤄 왔습니다. 형사재판은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절차인 만큼 법과 증거에 따라 책임의 범위를 분명히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중대 사건일수록 법리 검토와 선행 판결 분석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실무에서는 어떻습니까? A. 중대 사건일수록 사실관계 정리와 함께 법리 검토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혐의 인정 여부를 다투는 차원을 넘어, 구성요건 해당성이나 고의 판단, 공모 범위처럼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세밀하게 정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사 판례의 흐름과 최근 재판 경향을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다만 연구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건의 사실관계에 맞는 논점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결국 실무에서는 이론적 논의와 실제 기록을 연결해 설득 가능한 논리를 구성하는 작업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Q. 판례 분석 과정에서 사실관계와 법리 판단 중 어느 쪽을
30년 넘게 교정 현장을 지켜온 장선숙 교도관은 스스로를 “수용자를 끝까지 바라봐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법학과 직업학을 공부하며 수용자의 재사회화를 돕고, 때로는 교도관 조직의 직무 환경까지 연구해 온 그는 교정을 “쉽게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오래 견디는 일”, 즉 ‘짝사랑’에 비유한다. 재범의 현실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오늘도 한 사람의 삶을 붙잡기 위해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장 교도관에게 교정의 의미와 수용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재직 중 방송대에서 법학을 공부하셨고 이후에는 출소자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직업학 박사까지 취득하셨습니다. 교도관으로서 수용자·출소자에게 애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어린 나이에 교도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현장에 들어가 다양한 환경의 수용자를 마주해야 했지만, 사건이나 소송 절차를 궁금해하는 수용자들에게 기본적인 설명조차 제대로 해주기 어려운 현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금처럼 법률구조공단이나 국선변호인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기라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사회복귀 업무가 본격화되던
Q.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우선 처음이시니 독자분들께 인사 겸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법무법인 에스 임태호 대표변호사입니다. Q. 내란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전담 재판부 설치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A. 신속한 재판에 대한 요구 자체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중대한 사건이 장기간 지연될 경우 피해자와 사회 모두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전담 재판부 설치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사건을 위한 전담 재판부가 구성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재판부가 결론을 향해 설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제도의 외형에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속도와 공정성은 함께 가야 합니다. 빠른 재판을 위해 절차적 엄격함이 희생된다면 그 판결은 결론과 무관하게 정치적 재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내란 사건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전담 재판부 설치보다는 기존 절차 안에서 심리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 특정 사건을 위한 전담 재판부 설치가 헌법